허영열(許永烈·64) 부천역사(주) 회장은 5번이나 창업 혹은 사업 인수에 뛰어들어 모두 성공했다. '타고난 사업가'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1973년 처음으로 창업, 지금까지 34년 동안 평균 5년도 채 안돼 한 번씩 창업 혹은 인수를 거듭하면서 사업규모를 키워왔던 것이다.
비결은 여행이었다. "사업의 큰 밑천이 됐다"고 했다. 그래서 좌우명도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다. 전 세계 가보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로 여행을 자주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꼴로 외국으로 나간다.
"다른 나라의 사례와 경험들을 직접 체득, 국내에 접목시켜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지론이다. 가령 파인애플만 해도 필리핀에 가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이를 국내에서 재배 판매하려 한다면 수지타산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한때 국내에서는 취약했던 화공약품 회사를 세워 성공했던 것도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이 뒷받침됐다고 했다.
1942년 합천 가야면에서 태어나 가산초등학교와 해인중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로 유학, 영남고를 거쳐 영남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기 몇 개월 전 지역의 우산 제조업체인 (주)협립제작소에 입사한 후 6년간 서울지사장으로 근무하다가 1973년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창업했던 회사는 우산 수출 및 섬유 제조업체인 경구물산(주)으로 종업원이 100명 정도였다. 뒤이어 미국 현지에도 별도 법인을 세워 우리나라와 미국 양측을 오가며 사업을 했다. 1979년에는 서울 중구 저동에 지하 2층·지상 6층 규모의 빌딩을 매입한 것을 계기로 부동산 임대업에도 뛰어들었다.
이어 1987년 경구물산을 정리하고 화공약품을 제조 판매하는 세건기업(주)을 인수했다. 직원 규모는 200명 정도로 늘어났으며 충남 당진에 3천 평 규모의 생산공장도 뒀다.
1990년에는 이 회사를 정리한 뒤 부천역사(주)를 설립, 민자역사 건설사업에 뛰어들었으며 9년간의 공사 끝에 1999년 역사를 준공, 개점했다.
지하 2층·지상 9층으로 연면적 2만여 평인 부천역사에는 할인점 및 예식장, 경륜장, 쇼핑몰 등이 있다. 전국 17개 민자 역사 중 다섯 번째로 건립됐으며 1천여 명의 직원을 포함해 관련 종사자만 5천여 명이고 연 매출액은 2천억 원이나 된다. 때문에 중소기업인으로 민자역사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대표사례로 꼽히고 있다. 한국철도민자역사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고 정부로부터 산업훈장과 포장 등도 받았다. 지난달에는 영남대 재경동창회장이 됐다.
허 회장은 "국가든 지역이든 경제가 회생되기 위해서는 사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급선무"라며 "투자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야 선진국이 되고, 살기좋은 고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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