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되면 불거지는 민선 지자체장들의 인기영합 행정이 올해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철저하게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같은 '연례행사'가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속은 않습니다.
지난 13일 오후 5시 30분 대구 동구 신암동 평화시장 앞 아양칠성로. 양방향 모두 버스전용차로가 운영되는 시간이지만 버스전용차로는 불법 주.정차한 자동차들이 빼곡히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버스정류장까지 막는 바람에 버스들이 이를 피해 곡예 운전을 하는 등 아찔한 순간이 반복됐다.
30분쯤 지나자 동구청 불법 주.정차 단속차량이 두대의 견인차와 함께 나왔다. 그러나 경고방송만 하고 지나쳤다. 버스전용차로에 주차를 했던 한 운전자는 경고방송에 황급히 자신의 차에 탔지만 단속차량이 지나가자 슬그머니 내렸다. 결국 단속차량이 지나가자 이곳은 다시 불법 주.정차 천국으로 변했다.
같은날 오후 대구 중구 밀리오레 앞 국채보상로. 버스전용차로에는 늘어선 택시들과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 장학영(55) 씨는 "불법 주차때문에 버스가 도로 한가운데에 정차해 불안하다"며 "왜 단속이 제대로 안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구참여연대 강금수 시민감시팀장은 "주민불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불법 주.정차, 쓰레기 투기 등 기초질서 위반행위에 대한 단속은 주민들이 뽑아준 민선 단체장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선거를 의식해 단속하지 않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노인복지 챙겨드립니다.
지난 10일 대구 남구청 민방위교육장은 60세 이상 어르신들로 빈 틈이 없을 정도였다. 지난달말 일자리 사업 공개모집을 통해 남구 어르신을 565명이나 뽑았지만 배정된 돈이 너무 많이 남아 220명을 더 모집했기 때문.
남구청에 따르면 올해 어르신 일자리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지난해 3억1천120만 원에서 올해는 10억1천486만 원으로 226%나 껑충 뛰었다. 일자리를 얻은 어르신 수도 지난해 318명에서 올해는 785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한 복지시설 관계자는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어르신들의 표심잡기에 나서는 것처럼 비춰질 정도로 노인복지분야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며 "한쪽에 지원이 집중되다 보니 '아무리 들여다봐도 표가 안 나오는' 아동복지분야는 된서리를 맞고 있다"고 털어놨다.
게다가 오는 24일부터 처음 실시되는 저소득계층을 위한 긴급복지지원 사업도 정부의 선거용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시장님이 주인입니다.
문경시는 지난 13일 문경읍 하리에 기능성 문경온천을 개장했다. 이곳은 지난 1997년 30억 원을 들여 만든 문경온천 시욕장 자리로 노인전문병원을 건립한다며 2004년 12월 폐쇄 결정했다가 불과 6개월만에 방향을 바꿔 기능성 온천으로 조성됐다.
문경온천 시욕장이 문제가 된 것은 2000년 시욕장 주변에 들어선 '문경종합온천' 때문. 이 온천의 실소유주는 현 박인원 시장이다. 이 시욕장은 박 시장이 취임한 2002년부터 적자경영 등을 이유로 매각과 폐쇄 방침이 흘러나오다 결국 노인전문병원 건립으로 둔갑했다. 주민들은 시욕장 폐쇄에 반대했으나 문경시는 지난해 1월부터 온천을 허물고 90여억 원을 들여 노인전문병원 조성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방재정법을 어겨 국도비를 지원받지 못하자 유야무야돼 혈세만 낭비한 꼴이 됐다.
기능성 문경온천은 당초 노인전문병원 부속시설로 추진했던 것으로 아직 완공이 덜 됐지만 시장 예비후보 등록일(19일)을 코앞에 두고 부분 개장됐다.
◆군수님의 고향입니다=청송군은 진보면 일대에 각종 편의시설을 짓는다. 85억 원을 들여 곧 준공 예정인 진보 문화체육센터에 이어 진보 농어촌 공공도서관(20억 원), 체육공원(28억 원)을 건립키로 했다. 이 사업계획은 지난 2월과 3월 잇따라 발표됐으며 진보면은 현 배대윤 군수의 고향이기도 하다.
◆차기 임기 사업도 미리 언급=백상승 경주시장은 지난 13일 중부동 시정설명회에서 5만5천여평에 이르는 경주역사를 행정타운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역사는 경부고속철도 건천읍 화천리에 신역사가 마련돼 폐쇄될 예정이어서 그 용도에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백시장의 이 발표는 선거를 불과 2개월여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선거용으로 의심받고 있다. 우선 행정타운조성이라는 큰 문제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라 각 동사무소를 방문하는 자리에서 언급됐으며 구 역사폐쇄는 신역사가 완공되는 2010년 이후에야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백시장은 경주시청은 물론, 대구지검 경주지청과 대구지법 경주지원에도 협조를 구해 함께 옮기겠다고 밝혔지만 지청과 지원은 이미 충효동에 이전 부지를 확보해 둔 상태다.
◆이제는 바꿔야하지 않겠습니까?=전문가들은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공약을 수시로 철저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한 선거때만 되면 재연되는 선거용 '물렁뼈' 행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계명대 행정학과 하정봉 교수는 "선거철만 되면 인기를 의식해 단속은 게을리하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우리 선거문화가 아직도 후진성을 보이는 것"이라며 "선진국처럼 공약 이행과 재원조달 방안과 기한, 정책 우선순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는지에 대해 수시로 평가하고 검증해 연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구대 행정학과 송건섭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인기에 영합한 선심용 행정을 펴지 않는다"며 "이는 시민단체와 언론 등이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며 우리나라도 제도적으로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돈·김진만·엄재진·정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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