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한국 야구의 놀라운 질주

길몽을 꾸고 있는 한국 야구 드림팀의 멈추지 않는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에서 철벽 마운드와 완벽한 수비, 타선의 집중력을 보이며 악몽 속에서 헤매이는 미국과 일본의 드림팀을 연파하고 4강에 진출했다. 야구팬들과 선수들 조차 미국과 일본에 이길 것이라고 자신하지 못했지만 야구 드림팀은 그들의 실력이 자타가 평가하는 이상으로 훌륭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6경기에서 모두 이기며 팀 방어율 1.33, 무실책, 이승엽의 5홈런 등 한국의 성적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처음 열린 WBC 대회는 '야구 월드컵'이라고 하지만 미국의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 노조가 중심이 된, 하나의 이벤트성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대회가 계속 이어진다면 권위를 쌓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권위를 인정받기에는 이른 대회이다. 게다가 미국이 자신들이 유리하도록 경기 일정을 조정하려고 했는가 하면 미국에 유리한 편파 판정이 나오고 경기 방식도 비상식적으로 만들어 대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었다. 스포츠의 세계는 순수하지만 스포츠 바깥의 세계는 타락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강대국 미국은 국제 정치에서도 다소 이기적이고 오만해 욕을 먹고 있지만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얼룩을 덧칠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의 멋진 승리가 거듭되면서 야구장 밖의 얼룩을 덮어 버렸다. 한국의 연승은 숱한 화제와 함께 대회 흥행에서도 홈런을 날리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의 두번째 대결에서 이겨 4강 탈락의 위기에 빠졌던 미국이 계속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야구팬이 많은 미국에서 열리는 이 대회의 성공이 지속되도록 했다.

이 대회에 한국은 당초 4강의 목표를 내걸었으나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자신하지는 못했다. 이에 비해 야구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존재를 무시했다. 일본의 야구 영웅 스즈키 이치로는 한국에 대해 '30년 이상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겠다'고 했고 미국의 최다승 투수 돈트렐 윌리스는 '50개의 공으로 5이닝을 막겠다'고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한국은 이 모든 것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한국이 승리를 거두는 과정은 야구에서 맛볼 수 있는 최상의 플레이로 넘쳐났고 승부의 긴장미가 최대한 끌어올려진 내용으로 가득 찼다.한국은 선수들 개개인의 멋진 플레이와 함께 단결력도 매우 돋보였다. 김인식 감독과 코치진, 이종범과 박찬호 등 맏형격인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위해 헌신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며 이러한 팀 정신은 한국의 놀라운 전진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내외 야구팬들과 내외신 언론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한국의 운동 선수들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선수들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때때로 감동적인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4강에서부터 최근에는 토리노 동계올림픽의 선전, 피겨 요정 김연아의 세계 제패, 김유림의 스피드스케이팅 주니어 무대 정상 소식 등은 일상에 지친 국민들에게 청량제가 됐다. 한국의 승리에 열광하는 국민적 반응에 대해 '스포츠 내셔널리즘'이라는 비판의 소리도 있으나 짜릿한 승부의 세계에서 거둔 승리는 열광하면서 즐기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야구는 다소 거칠지만 힘을 바탕으로 하고 일본은 깔끔하고 정밀한 플레이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의 야구는 일본만큼 정밀하진 않지만 세련된 기술과 힘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한국 야구는 힘에다 군더더기없는 세밀함까지 보여줬다. 바둑에서도 한국은 강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미학적인 일본 바둑과 대륙적 기풍의 중국 바둑에 우위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 스포츠의 특징이 강인한 정신력과 승부욕, 생명력 등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국 야구가 WBC대회에서 우승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이전의 경기에서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승을 자신하긴 힘들다. 그러나 자신들이 가진 실력이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며 이미 많은 것을 이룬 한국 선수들은 멈춰설 때까지 나아가려 할 것이다. 멈춰서는 곳이 정상이기를 박수를 보내며 기대해 본다.

김지석(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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