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향 경제인과 차 한잔-KIET 국가균형발전센터 장재홍 연구원

산업연구원(KIET)의 장재홍(場在洪·50) 연구원은 주말부부다. 부인 조정희 씨가 대구 경명여고 교사로 일해 합가(合家)할 수 없었다. 잠시 대구의 주택회사인 서한에서 산업기술연구소장을 맡았던 기간 이외에는 모두 서울에서 근무했다. 경부고속철(KTX)이 생겨 2시간이면 대구에 갈 수 있어 고맙다.

◆대구 토종=의성이 고향인 그는 경북중, 대구고, 경북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그리고 산업연구원 국가균형발전연구센터에서 대구·경북 담당자로 일한다. 산업자원부가 의뢰하는 대구·경북 관련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한다.

2003년에 대구산업발전계획도 짰다. 그 내용이 대구 지역혁신발전 5개년 계획에 많이 담겼다. 섬유 일변도에서 벗어나 메카트로닉스· IT·BT·NT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는 대구가 추진하는 사업을 정부에 반영되도록 하는 거름이 된다. 산업자원부의 두뇌격이다.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등에도 국책 연구기관이 있다. 대구·경북 사업은 주로 출향한 대구·경북 출신 인사가 담당한다.

하지만 대구시나 경북도는 이들을 챙기지 않는다. 이른바 '향토장학금'을 주는 호남과 무척 다르다. 호남은 지역에서 근무하다가 중앙부처로 옮기는 공무원에게 엉뚱한 돈을 받지 말고 품위있게 생활하며 지역을 위해 일하라고 월 수백만 원에 이르는 품위 유지비를 아예 예산에 책정해 집행하고 있다. 그런 지원금을 받고 있는 공무원들이 어떻게 하든지 지역에 기여하려고 노력하리란 것은 인지상정이다.

장 박사는 "국책 연구기관에 있는 출향인사끼리도 서로 잘 모르고 있다"며 "대구시와 경북도가 공동으로 이들을 파악해 정례 모임이라도 만들면 지역 발전을 위해 크게 도움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의견을 모아야 한다=대구에 희망이 있느냐는 질문에 장 박사는 "요즘 들어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며 "괜찮은 IT 메카트로닉스 기업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 설립에 대해서도 큰 희망을 걸었다. 영남권의 과학기술 두뇌로 역할하면 지역발전의 기폭제가 되리란 얘기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다.

먼저 대구시가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시장 부시장 등 몇몇 고위간부가 독단적으로 사업을 결정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시가 의욕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펼칠 경우 우선 담당자들 간에 인식 공유가 이뤄져야 합니다. 학계 의견 수렴 과정도 있어야 하고요. 지역사회에서 충분한 의견교환과 인식공유를 통해 사업을 결정하면 좋은 안이 나오고 안이 좋으면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런데 특정사안의 경우 한두 사람이 사업을 결정해 담당 공무원조차 사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DGIST 입지가 현풍으로 결정된 데 대해서도 그는 무척 아쉬워한다. 대구에 땅이 부족해 부지확장성을 보고 현풍으로 결정한 듯하나 대구공항과 동대구역에서 다시 40분 이상 가야 하는 현풍에 근무하는 것을 연구자들이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부지확장성은 주변요인이라고 봅니다. 스위스에선 연구시설 건물 하나에 연구원들이 복작복작거리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결정된 이상 잘 만들고 잘 운영해야지요."

◆GDP축 육성=그는 DGIST 입지가 대구-구미-포항 사이에 건설되기를 바랬다. 대구·경북의 미래 희망은 이 축의 연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미-대구-포항축을 '대구포'가 아니라 지명 영어 철자 두음을 딴 'GDP'로 명명했다.

"GDP를 보면 산업의 집적도가 높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수준입니다. 산업의 클러스터링이 이뤄져 있는데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두뇌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대구시-경북도, 포항공대와 방사광가속기, 경주 양성자가속기, DGIST가 두뇌역할을 해 GDP를 집중 육성하고 그 과실을 경북 북부 쪽에서도 딸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는 대구가 땅을 아껴야 한다고도 했다. 땅의 여유가 많지 않아서다. 기업을 유치하더라도 무작정 유치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대구를 끌어갈 신산업 신기술 분야의 기술력 있는 기업을 선별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는 미국 IBM 수준의 기업을 유치하겠다며 몇 년 째 땅을 비워놓고 있습니다. 대구도 얼마남지 않은 땅을 아껴야 합니다. 경북에 땅의 여유가 많으니 경북을 발전시켜 대구가 과실을 따먹는다는 발상을 대구시가 해야지요."

경북이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클러스터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방폐장 유치로 경북이 에너지클러스터를 만드는 좋은 호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해요. 에너지 관련산업이 많은 울산과 협력해야 합니다. 경주-포항-울진과 울산을 연결하는 큰 프로젝트를 만들면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에너지클러스터를 만들려는 광주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원자력 관련 학과를 유치하려는 노력도 해볼 수 있고요. 상상도 반복하면 현실이 됩니다."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청와대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지역균형발전 구상을 발표하면서 타 시도의 비전은 모두 제시했는데 대구와 경북의 비전을 제시할 수 없어 한동안 빈칸으로 남겨뒀다고 한다. 결국 대구의 빈칸을 교육 학술도시로 채웠지만 지역민들조차 선뜻 동의하지 않는 비전이었다.

장 박사도 "대구의 비전과 이미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울산은 친환경도시, 부산은 금융 물류 해양도시, 광주는 문화도시 등 들으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는 비전과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구는 모르겠어요. 덥고 추운 곳, 사고가 잦은 곳이란 생각이 우선 듭니다. 서문시장 산불이 났을 때 동료들이 '또 대구냐'라고 해서 민망했어요. 외국기업 투자 실적이 가장 낮은 곳이 대구·경북인데 대구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인지도가 높아져야 외국기업들이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 획일성도 문제다. 북한 개성공단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도 대구 출신이라고 하면 '꼴통 보수'라고 한단다.

물론 대구·경북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장 박사가 직접 관여한 지자체별 전략산업기획 분야 평가에서 대구와 경북이 2년째 최우수 점수를 받았다. 섬유에서 벗어나려는 대구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문제는 기획이 아니라 실현입니다. 땅이 부족한 대구와 인재가 부족한 경북이 협력하지 않으면 길이 없습니다. 최근 대구·경북이 협력 노력을 벌이고 있는데 대구·경북이 통합된 수준에까지 올라가야 제대로 된 협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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