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을 통해 대한민국 전체가 붉은색으로 달아올라 4강 신화의 위업을 이룬 지 4년, 우리 안방에서 치러졌던 월드컵이 어느새 역사 속으로 자리하고, 먼 일로만 느껴졌던 2006 독일 월드컵이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전 세계는 다시 한 번 월드컵의 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월드컵 입장권은 3차 판매까지 18대 1의 경쟁률로 마감됐고, 이어서 4차 판매와 대회 한 달 전인 5월에 최종 판매에 들어가게 된다. 이 가운데 89%가 유럽 국가에서 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본선에 진출한 32개국은 월드컵에 국운을 걸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한결같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 세계의 축구팬들은 최고 수준의 축구를 한 달 내내 쉼없이 원없이 만끽할 수 있는 월드컵 무대가 개막하기를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월드컵 출전을 앞둔 스타플레이어들은 몸만들기와 부상 방지에 여념이 없고, 각국의 축구협회와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는 상대팀의 전력을 분석하고 조직력을 다지며 월드컵 출전 최종 엔트리를 구성하기 위해 밤샘 연구에 돌입했다.
▨ 축구는 전 세계적인 스포츠 종목
축구는 왜 이토록 전 지구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까. 축구가 가지는 매력은 스타플레이어 한 명의 능력에 승부가 좌우된다기보다는 팀플레이와 조직력이 무엇보다 중요시되며, 정신력이라는 요소 역시 경기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더불어, '공은 둥글다'는 축구계의 명언과 함께 이변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스포츠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대개 한두 골로 승부가 결정되며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도 축구팬을 불러 모으는 요인이다.
하지만 월드컵의 열기와 축구의 인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최적의 사례는 전 세계에 걸쳐 축구 리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각국이 보유한 프로리그의 현황을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축구의 볼모지로 여겨졌던 미국조차 2002월드컵 8강 돌풍 이후 MLS(Major League Soccer)가 프로농구, 프로야구, 하키 등에 버금가는 인기 스포츠로 떠오르고 있다.
▨ 월드컵과 내셔널리즘의 만남
축구와 월드컵은 내셔널리즘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예전보다는 희석됐지만 여전히 일본과의 경기에서 거두는 승리는 다른 국가와의 경기에서의 승리보다 더 통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라이벌 국가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들은 국가적인 영웅으로 떠올랐고, 질 경우에는 팬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맞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얼마 전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치명적인 실수로 이동국에게 골을 내준 멕시코의 골키퍼 산체스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자책골을 기록했던 콜롬비아 수비수 에스코바르가 권총저격으로 사망한 일도 있었다. 안정환은 2002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골을 넣어 한국 국민들에게는 기쁨을 선사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속팀 '페루자'로부터 방출된 바 있다.
월드컵은 무엇보다도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진다는 점(엄밀히 따지면 축구협회 간의 대항전이지만),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의 선수들이 가장 격한 플레이를 펼치며 수만 명의 관중들과 호흡한다는 점에서 흡사 전쟁과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실제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크로아티아와 유고슬라비아는 축구에서의 격돌이 전쟁으로까지 이어졌으며,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전쟁 이후 앙숙이 됐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는 각기 다른 민족의 정서를 인정하여 단일팀을 이루지 않고 있다.
축구에서의 업적이 국가적인 경사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은 2002월드컵에서 한국선수단 전원이 군 면제의 혜택을 받고, 국가 훈장을 받았으며, 월드컵 폐막 다음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한 사실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06월드컵을 통해 처음으로 본선 무대에 나서게 된 나라들 역시 이 같은 일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사상 처음 월드컵에 진출해 한국과 함께 G조에 속한 토고는 월드컵 본선행이 확정된 다음날을 역사상 유례없는 유급 공휴일로 선포했고,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바레인과의 플레이오프를 승리로 이끌며 월드컵 본선행을 이끈 선수단이 귀국하던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국민 1인당 하루 생계비가 채 2달러밖에 되지 않는 아프리카의 약소국 앙골라는 월드컵 본선행을 이뤄낸 선수단에게 15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 월드컵 상업주의
월드컵에 대한 전 지구적인 열풍은 월드컵의 상업화 논란과 연결된다. 실제로 블래터 FIFA 회장은 2002월드컵을 앞두고 2년마다 월드컵을 개최하자는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상업적인 가치가 불어나는 월드컵을 좀 더 여러 차례 개최해서 많은 수익을 올리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축구 전문가들의 반대로 없었던 일이 됐다. 그들의 반대 주장은 다음과 같다. 월드컵을 2년마다 개최한다면 4년에 한번 이뤄지는 초대형 빅 이벤트라는 희소가치가 상실됨은 물론 각 대륙별로 예선전을 치를 시기도 빠듯하고, 각 대륙의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대회는 실종될 수밖에 없으며, 올림픽과 일정이 겹치는 경우가 발생해 선수들이 매년 쉴 새 없는 강행군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2002월드컵은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비롯해 터키, 미국, 세네갈 등이 연이어 이변을 연출했지만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등 강팀들이 조기 탈락하면서 일부 팬들로부터는 재미없는 월드컵이었다는 평이 있기도 했다. 이러한 강팀들의 부진은 이미 클럽 무대에서 오랜 경기를 소화하고 지친 몸으로 경기에 출전한 스타플레이어들의 부진에서 비롯됐다. FIFA는 선수들이 최고의 컨디션에서 대회를 소화할 수 있도록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대회 개막 25일 전인 5월 15일부터는 소속 클럽의 경기를 뛸 수 없게 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이는 세계 축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클럽 축구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의 수준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 월드컵과 미래
월드컵은 최신 기술과 시스템을 도입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면서 진화해 나가야 한다. 세계인이 월드컵을 대할 때 중요한 것은 월드컵이 가지는 상징성과 낭만, 고유의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월드컵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것은 인류의 재산이자 보물을 훼손하는 일이다. 열정이 충만해야 할 스포츠에서마저 차디찬 상업주의의 냉기가 흘러서는 안 될 일이다.
오랫동안 패배와 좌절의 역사만을 반복해온 한국 축구는 2002월드컵 이후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도약했고, 2006월드컵에도 큰 기대감 속에 세계인의 축구 제전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 이제 100여 일만 기다리면 4년을 기다리고 준비해온 결과가 펼쳐진다. 승리와 패배, 경기를 뛰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대회를 준비한 사람들과 대회를 지켜보는 수백 만의 관중과 수십 억의 시청자들, 그리고 응원의 함성, 이들의 발자국 하나하나와 땀방울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역사가 될 것이다. 이제 그것을 즐기는 일만 남았다.
▲ 2006 독일 월드컵
올해로 18회를 맞는 대회로, 6월9일부터 7월9일까지 한 달간 독일 함부르크 등 12개 도시에서 나눠 개최된다. 예선을 통과한 전 세계 32개 국가대표팀이 8개 조로 나눠 경기를 치른다. 한국 대표팀은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함께 G조에 속해 있는데, 16강 진출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 MLS
1996년 10월 출범한 미국 프로축구리그. 미국에는 NASL(북미 축구 리그)이 있었으나 1984년 인기 저조를 이유로 사라졌으며, 월드컵 유치를 위해 12년 만에 MLS가 창설됐다. 현재 10개 팀이 매 시즌 28경기를 치른다.
▲ 상업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질적인 사용가치뿐만 아니라 교육·예술·사상·이데올로기·도덕 및 인간 존재 그 자체가 최대한의 이윤 실현의 수단이 된다. 본래 이윤 추구의 장이 될 수 없는 의료·복지·종교 등의 영역으로까지 도의적 한계를 넘어서 자본의 논리가 침투해 들어가는데, 이 경향을 상업주의라고 한다. 현대에는 이 경향이 거대화한 매스미디어와 결합하여 사회기구·인간행동·문화구조의 심층부까지 침투하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포항 찾은 한동훈 "박정희 때처럼 과학개발 100개년 계획 세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