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상대 팀의 자살골에 의존하는 플레이가 펼쳐진다면 관중들은 어떨까?
우리 정치판이 이와 흡사하다. 여야가 국회활동을 통해 정책으로 경쟁, 지지세력을 확산시킨다는 '정치의 ABC'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이보다는 상대 당의 실언이나 실책 등을 '꼬투리'삼아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고, 그것도 한껏 부풀리는 데 익숙한 것처럼 보인다.
정치판의 '장(場)'이 서게 되는 각종 선거를 앞두면 이 같은 플레이는 더욱 노골화한다. 물론, 정책 공약도 경쟁하듯 내놓지만 표심에는 약발이 크게 먹히지 않는다. 상대 측 흠집을 폭로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지만 이것도 예전같지 않다.
일거에 판세를 가를 수 있는 것은 자살골이다.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상대 당에서 자살골이 나오기를 목매 기다린다. 마음같아서는 이를 유도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선거를 치르고 나면 이긴 당은 "민의의 승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진 쪽에서는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등 선거결과를 온통 민의(民意)로만 포장해 버린다. 우리 정치판은 과거에 이랬고, 요즘도 그다지 차이가 없어 보인다.
# 지방선거를 2개월여 앞둔 최근
한나라당의 모 의원이 술자리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사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열린우리당에서는 한나라당과 당사자 의원을 공격하는 데 당력을 총동원, 여론몰이에 나섰다. 선거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던 처지에서 호재를 만난 격이 됐다. 한나라당도 얼마나 다급했던지 의원직까지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있을 정도다.
정국 형세가 역전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여당 쪽에서 자살골이 나왔다.
현직 총리가 3·1절 골프를 친 게 파문으로 번지면서 각종 의혹까지 연일 제기됐고 급기야 사퇴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던 것이다. 끙끙 앓던 한나라당은 쾌재를 불렀고, 한껏 공세 중이던 열린우리당은 수세가 돼버렸다.
결국, 양측은 자살골을 주고받은 셈이 됐고 판세는 다시 혼미해졌다.
# 2년 전 총선 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로 비난여론이 비등, 한나라당에서는 텃밭이라던 대구에서조차 판세가 비관적이었던 그때도 자살골은 터졌다. 여당의 핵심 당직자가 노인 폄하성 발언을 했던 게 일파만파로 번져 이곳의 판세를 다시 뒤집어버렸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정치권은 적극적으로 득점 전략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상대 측 실점에 편승, 반사적으로 당 지지도를 올리는'마이너스 정치'에 익숙해 있다.
이번 지방선거가 임박해서는 또 어떤 자살골이 터질 것인지…. 웃을 수도 없는 씁쓸한 코미디를 지켜봐야 하는 유권자들의 심정은 또 어떨까?
서봉대 정치부 차장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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