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림단체 선정 '올해의 효부상' 배금희씨

시아버지를 50년 간 수발한 사람이 있다. 자신의 나이 일흔이 넘도록.

유림단체인 '춘추회'가 선정한 올해의 효부(孝婦)상 수상자 배금희(71·여·대구 서구 평리동) 씨. 그는 찾아간 기자에게 손사래부터 쳤다. "부모 자식 간에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인터뷰는 무슨 인터뷰? 저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고 보니 부모 된 마음을 잘 알지요. 그래서 좀더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 뿐입니다."

안방문이 열리면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배 씨의 시아버지다. 1898년생이니 이미 100세를 훌쩍 넘긴 나이다.

"이렇게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것도 다 며느리 덕분이야." 시아버지 석판수(108)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는 눈을 의심하게 했다. 부자유스럽지만 혼자서도 잘 걷고, 웬만한 대화는 전혀 불편하지 않을 정도. 게다가 매일 아침 집앞 청소까지 도맡아 한다고 했다.

"아버님, 제가 효부상을 탄대요, 글쎄."(며느리)

"암, 그래야지. 내가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지만, 네 얼굴만 보면 떠나기가 싫어져."(시아버지)

배 씨는 역할이 다양하다. 이발사, 요리사, 목욕 도우미, 말벗 등…. 모두 시아버지를 위해 선택한 길이다.

"스무 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시집 온 저를 무척 답답해 했을 테지만 그동안 아무런 내색 없이 어른들이 얼마나 사랑을 주셨는데요. 그러니 이젠 제가 그 은혜를 갚아야 하잖아요."

배 씨의 남편(75)은 이런 아내의 마음이 항상 고맙다고 했다. "지금은 모두 출가한 아이들 키우랴, 시부모님 모시랴, 힘들텐데도 그동안 내색 한번 하지 않는 아내가 너무 고맙다"면서 "이런 착한 아내를 만난 것이 내 평생 가장 큰 복"이라고 자랑했다.

"어른 모시느라 바깥일은 전혀 할 수 없는데 속상하지 않느냐"고 하자 배 씨는 "50년 동안 늘 함께 지내다 보니 이젠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불안하다"며 "가끔 어디를 가더라도 집에서 아버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든든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배 씨에게 요즘 고민이 생겼단다. 건강하던 시아버지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탓.

"식욕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떨어졌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니만큼 가시는 날까지 편안하고 건강하게 계셨으면 좋겠는데."

배 씨는 이 세상 모든 며느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요즘 많은 여성들이 결혼해서 처음 시댁에 적응할 때 며느리 역을 '연기'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입버릇처럼 말하잖아요. 그들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군요. '가족'이란 이름으로 용기를 내시라고."

효부 배금희 씨의 삶. 그의 얼굴은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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