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상한 대진 탓에 4강에 머물고 말았지만 지난 며칠간 우리 모두는 야구 덕분에 즐거울 수 있었다. 파란 유니폼의 그들이 세계 강호들을 파죽지세로 격파해 나가면서 우리를 모처럼 신바람나게 했다.
60대 중반의 한 지인은 야구의 '야'자도 잘 모른다. 일본과 한판 결전이 벌어진 그날, 시장에 갔다가 군중들의 와~ 와~ 거리는 소리에 홈런이다 싶어 "이승엽 선수가 홈런쳤어요?"하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일본 선수가 홈런을 쳐서 우리가 지고 있어요"하더란다. 그때부터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고 조여드는 듯해 장이고 뭐고 얼른 집에 와서 약 먹고 누워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고 했다.
스포츠와는 사돈의 팔촌보다도 멀 사람들까지 가슴 졸이게 만드는 그 것. 정말이지 '우리나라'란 무엇일까. 식민지와 전쟁의 상처를 딛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나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경제적·정치적 성공을 거둔 나라. 반면 돈이 돈을 벌고,노력과 땀보다는 연(緣)과 줄대기가 더 중시되고, 기회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사회 정의는 수시로 실종되는 나라. 그래서 우리를 실망하게 하고, 슬퍼지게 하며, 가끔은'확' 보따리 사고 싶게 만드는 나라.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이름앞에선 세계가 놀랄만큼 전국민이 똘똘 뭉치고야 마는 나라.
일본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여전히 '숙적(宿敵)'을 못 벗어나고 있다. 그 앞에선 언제나 짚단에 옮겨붙은 불처럼 무조건 활활 타오른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일본을 제대로 이기기나 하는 걸까.
어떤 이가 일본의 한 호텔에 깜빡 뭔가를 두고 귀국한 후 몇 년이 지나 다시 일본에 갔을때 혹시나 해서 그 호텔을 찾아갔다. 놀랍게도 그때의 물건이 고이 보관돼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놀라워 하는 그에게 호텔 관계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긴 일본입니다".
확실히 우리도 많이 달라졌다.얼마전 한 친구가 레스토랑에 지갑을 두고 나온 사실을 이튿날에야 알았지만 되찾을 수 있었다. 또다른 이도 꽤 많은 돈이 든 지갑을 식당에 두고 나왔다가 경찰서 분실물센터에서 되찾았다. 정직·친절·타인에 대한 배려 등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일본에는 비할 바 못된다. 한국인의 정직함·친절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외국인들에게 "여긴 한국이니까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전경옥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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