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는 걸까. 늘상 있어왔던 일인데도 정치인들의 연이은 대국민사과에 착잡해진다. 이럴 때일수록 꼿꼿했던 선비정신이 그립다.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마음을 곧추세우고 싶다.
병산서원 가는 비포장길을 걷는다. 신작로를 연상케하는 넉넉한 옛 길. 낙동강을 끼고 산을 휘돌아 가는 길은 봄빛을 막 내기 시작했다. 하회마을 입구에서 병산서원까지는 3㎞ 남짓. 승용차와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이 흙길은 꼭 걸어가 봐야 한다. 가만가만 가다보면 걷는 불편함도 곧 익숙함으로 바뀐다. 편리함만 좇다가는 시원한 낙동강의 물줄기가 동행하는 이 멋도 모를 일이다. 그래선지 아직 확장이나 포장계획은 없다. 대신 하회마을 입구 쪽에 주차장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걸어들어가게 하거나 마음이 바쁜 사람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할 계획이다.
가는 길은 구비돌아도 선비정신만은 올곧을 터. 이 정신은 병산서원 입구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복례문(復禮門). '극기복례'(克己復禮 : 자기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라는 뜻)에서 따왔다.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복례문을 넘으면 빛 바랜 기둥과 마루, 나무로 만든 계단에서도 유생들의 향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병산서원은 퇴계의 제자인 서애 유성룡이 1572년 풍산 유씨 문중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을 옮겨지은 것이다. 우리나라 서원건축의 백미라고 할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다.
계단을 올라 입교당 앞에 섰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강학당(講學堂)이고 좌우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기숙사였다. 조촐하면서도 단정하다. 입교당 마루에 올라앉아 본다. 인공적인 건물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앞쪽으로 일곱 칸의 큰 누각인 만대루가 건너편 경치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서 있다. 아무런 치장을 않고 기둥 사이도 막힘없이 탁 틔여있다. 기둥으로 구분된 한칸 한칸은 그대로 병풍이 되어 푸른 낙동강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 병풍 위로는 높아보이지 않은 병산이 자연스럽게 드러누워 있다. 병산의 모습은 안개에 싸인 듯 희미하다. 입교당에서 보는 병산은 오후 늦은 때가 제일이다. 해가 지면서 햇살이 병산을 비춰야 기막힌 풍경을 드러내기 때문. 주변조경 없이 자연을 그대로 끌어들인 지혜가 놀랍다.
입교당 앞쪽 마당엔 옥매화가, 뒤편 사당 앞엔 350년된 백일홍 나무가 가득하다. 오래된 옥매화는 이제 막 꽃망울을 내밀었다. 늦게 핀다고 탓할 수도 없는 노릇. 기다릴 수밖에 없다. 활짝 피어난 남도의 매화보다 더 아름답다. 기대가 있고 설렘이 있어서다. 사당 앞의 백일홍은 기대가 더 크다. 그 백일홍은 묵묵하게 봄부터 여름까지 내공을 쌓다가 9월이면 100일동안 꽃을 피울 게다. 말없는 옥매화와 백일홍은 말만 앞서는 우리들에게 여유와 기다림을 배우라고 가르친다.
글.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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