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정년이 되어 퇴직하는 노년층의 수가 새로 직장에 들어가는 젊은 사람들의 수 보다 많아지는 반면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급격하게 진입하면서 정부도 해법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런 저런 진단과 처방이 제시되지만, 무엇인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문제 핵심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족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여성들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고령자가 많아지고 어린아이들의 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어느 사회나, 인간사에서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이것을 문제로 본다면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도래는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두 가지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첫째는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들어 노인을 부양할 세납자가 줄어 들고, 두 번째는 인구 감소로 인한 국가 경쟁력 약화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결의 한 방편으로 정부는 여성들에게 아이를 많이 낳아 줄 것을 은근히 압박하면서 여성의 출산권마저 국가가 통제하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1960~70년대는 산아제한정책 방식으로 국가가 국민들의 사적인 문제에 개입하여 통제할 수 있었다. 현재도 구태의연한 발상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정부정책을 보면서 아이를 낳고 양육의 책임까지 져야하는 여성들의 고초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지적이 충분히 나올 만 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묘책을 찾기에 앞서 원초적으로 해야 할 질문은 "왜" 한국여성들이 아이 갖기를 망설이거나, 한 명 아니면 아예 출산 자체를 기피하는지, 그 요인을 되물어 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직장에서의 성차별, 가정에서 양육문제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가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이 첫째로 꼽히고 있다. 한 아이를 대학까지 교육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억대를 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만 낳아주세요. 양육은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많은 여성들은 이 말을 하는 정부에게 씁쓸한 생각에 배신감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이미 태어난 어린이들이 국가로부터 어떤 책임 하에 돌봄을 받고 있는가? 정부의 입에 발린 말(Lip-service)은 앞으로 태어날 어린이들을 위한 정책이니 이것 또한 믿을 수 없다.
우리사회의 많은 어린이들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면서 사회와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옆으로 제쳐 놓고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잘하겠으니. "제발 아이만 많이 낳아 주세요." 하는 정부정책이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정부의 강요나 개입 없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서너 명의 자녀를 생산하는 저소득층의 여성들에게 공로상이라도 주어야하는 정부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다. 참여성노동복지터(참터)가 지난 2003년 동대문 의류제조업에 종사하는 기혼 여성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여성 1인 평균 2.5명의 아이를 출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사례를 보면, 참터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 나오는 3자매와 취학 전 아이 등 모두 4명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이 아이들의 어머니는 하루 15시간 이상 의류봉제공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 이 여성노동자는 장시간노동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공부방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저녁을 공부방에서 먹고 밤 9시에 집으로 가 엄마의 얼굴도 못보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 여성노동자들은 늦은 밤까지 일을 하지만 아이들을 동네 보습학원에도 보낼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빈곤층의 아이들은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무현 정부가 발 벗고 나선 출산장려 정책이 실효가 있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여성들이 안심하고 출산을 할 수 있는 정책이 선행되고,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조성되면 저출산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순옥(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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