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새드 무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다. 영화 '새드 무비'는 네편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닥쳐온 이별의 슬픔을 대변하듯 속절없이 비가 내리고 주인공은 오래오래 울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어느 소방관을 사랑하게 된 여자는 행여 연인이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감을 안고 산다. 염려가 현실이 된 순간 여자는 오래도록 눈물을 흘리며 사별의 고통에 몸부림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번째 이야기-인형 탈을 쓰고 관람객 도우미 노릇을 하는 이 여자는 얼굴에 심한 화상 흔적이 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그녀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간절히 필요했다. 짝사랑한 남자가 떠났을 때 삶에 대한 희망이 무너져 내렸다. '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세 번째는 무능한 애인과 끝낼 결심을 한 여자와 사랑을 붙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자의 이야기다. 결국 여자가 조건이 더 좋은 남자를 찾아 떠났을 때 그녀에 대한 원망은 자신을 향할 뿐이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은 사람은 추억 뿐 아니라 현재와 꿈꾸던 미래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상처투성이의 자기애만 남는다. '헤어지자/섬세한 손길을 흔들며/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마지막 이야기는 엄마와 아들간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 성공한 커리어 우먼인 엄마는 아들과 놀아 줄 시간이 없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엄마가 밉고 학교생활도 재미없고 인생이 싫다. 아이는 그림일기에 엄마의 얼굴을 괴물처럼 그린다. 다른 엄마들처럼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녹색 앞치마를 두르고 교통 도우미 하는 엄마를 보는 것이 소망인 아이에게 이별이 닥친다. 엄마가 암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아이는 "엄마"라고 불러보지만 병실의 하얀 시트처럼 엄마의 얼굴은 창백해져 가고 아이는 울다울다 잠이 들고 밖에는 폭우가 쏟아진다. 아이에게 엄마의 죽음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과 자신이 엄마를 미워했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아이는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사람은 여러 가지 위험상황과 불안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생후 6개월쯤의 아기는 어머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대상상실 불안'을 느낀다. 정글에서는 새끼가 어미를 잃으면 곧 죽음이다. 사람은 동물보다 성장과정이 더 길기 때문에 어머니 상실불안은 동물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2, 3살이 되면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도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엄마의 사랑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사랑 상실에 대한 불안'을 보이는 시기이다.

애인과 헤어진 이들이 느끼는 슬픔은 어린 시절 겪어온 상실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미국의 소설가 포크너는 슬픔과 아무 것도 없는 것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무미건조함보다 슬픔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슬픔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겠다는 강한 자아감을 드러낸 말이다.

최근 개그맨 김형곤씨가 요절했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풍성한 안도감을 선사했기에 그의 죽음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웃음과 울음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정말 기쁜 일도 정말 슬픈 일도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라는 성숙된 의미를 던져주고 간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