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수성구가 해결책은 아니다

얼마전 수성구의 한 중학교로 전학간 여학생이 같은 반 친구와 이런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너, 어디 사니?" "북구에 산다. 너는?" "달서구… 나도 위장전입했다."

요즘 청와대가 서울 강남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교육 양극화 문제를 제기해 시끄럽지만 강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대구에도 그 못지않은 수성구가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신학기가 되면 수천 명의 학생들이 대구 전역에서 수성구로 '대이동'을 한다. 이름있는 한 초교의 경우 몰려드는 학생들로 인해 매년 학급 수를 늘리는데 정신이 없을 정도다. 1학년은 4개반이지만 고학년 일수록 반수가 점점 늘어나 4학년 8개반, 5학년 9개반, 6학년은 11개반이나 된다. 6학년생이 1학년생보다 3배 가까이 많은 기형적인 분포다.

이들 중 상당수가 수성구로 이사를 왔겠지만 위장전입한 학생들도 꽤 있다. 초교생이 버스,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1시간 걸려 등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문제다.

'4당(當)5락(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예전에는 4시간 자면 명문대에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었으나 요즘엔 4학년부터 본격적으로 과외를 받으면 합격하고 5학년부터 과외를 받으면 낙방한다는 의미로 변했다고 한다. 수성구에서 초교생이 밤 10시까지 과외를 받는 모습은 전혀 드문 일이 아니다.

어릴 때 공부보다는 뛰어노는 데 열중했던 중년세대들의 눈으로 보면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본사 기획탐사팀이 '대구지역 고교별 서울대 및 의학계열 입학자 수'(3월 16일자 1, 3면)를 보도하자 수많은 독자들이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홈페이지에 댓글을 남겼다. '궁금증을 잘 풀어줬다'는 칭찬부터 "또다시 수성구냐."며 흥분하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고교 평준화정책을 없애야 한다." "대구를 하나의 학군으로 만들자."라는 대안까지 제시한 이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가슴에 와닿은 질문은 "결국 아이들을 위해 수성구로 갈 수밖에 없는가?"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비(非)수성구 학부모들이 수성구를 바라보는 착잡한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무리하면서 가기도 그렇고, 가지 않으려니 불안하고….

솔직히 필자도 정답을 줄 수는 없다. 저마다의 여건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수성구로 옮겨 간다고 만사형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대와 의학계열에 입학자를 많이 낸 학교라고 해서 다른 구(區)의 학교에 비해 특별하게 두드러진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이 없었다. 학교의 역할보다는 사교육과 학생의 열의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수성구 고교생들의 경우 입학 당시의 성적과 졸업 때의 성적을 비교해보면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며 "오히려 달서구, 남구 등의 몇몇 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성적을 입학때보다 많이 끌어올렸다."고 했다.

전적으로 수긍할 만한 얘기다.

사실 수성구 집중현상만큼 우려되는 것은 우수학생들의 의학계열 쏠림 현상이다. IMF 이후 대구, 특히 수성구에서 그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올해에만 230여 명이 의예·치의예·한의대에 입학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너도 나도 의사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의학계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진학담당 교사들에 따르면 이들이 의대에 가는 주된 이유는 장래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머리 좋고 재능 있는 학생들이 자기보신만 꾀하는 풍조라면 우리 사회에 미래가 없다. 과연 그런 마음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것이 더 걱정스럽다.

박병선 기획탐사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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