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 봄날-절박(切迫), 진지(眞摯), 진정(眞情)

봄 등산의 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의 으뜸은 막 머리를 내민 새싹을 쳐다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용납할 것 같지 않던 얼어붙은 땅을 그렇게 약하고 부드러운 것들이 열고 나온다. 어떤 기운이, 무슨 이유로 이런 역설을 만드는 것인가?

「생명의 절박함」이다. 절박한 생명의 기운이다. 추운 겨울 내내 생명을 지킨 것은 모체(母體)의 죽음으로서만 전달되는 에너지와 DNA속의 비기(秘技)덕택이다. 죽음을 통해 생명의 절박함을 전수받고 지켜온 것이다.

조심스럽게 푸른 새싹을 죽음의 땅에서 세상 속으로 내민 것은 절박(切迫)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절박함은 성급함이 아니다. 절박함은 자신속의 충만한 기운만 생각하는 편협함도 아니다. 이 우주 삼라만상 속에 자신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그이의 입장에 서면 나도 삼라만상의 작은 하나가 아닌가? 싹을 내고자 하는 것은 나의 기운이요, 봄날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기운이다. 그것을 느끼고 기다리고 인내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생명의 절박함이다. 성급하지 않고 편협하지 않은 절박함은 비로소 「생명의 진지함」으로 승화된다. 자신과 외부의 기운을 헤아리며 인내하다 때가 이르러 싹을 틔워내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아니다. 거친 비바람과 말라죽을 것 같은 무더위에 맞서야 한다. 이겨내면서 강해지고 타협하면서 전체의 생명을 느껴야 한다. 성장하는 것이다. 물려받은 생명의 대기록인 DNA속에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권리요 반드시 수행해야할 임무이다. 역경 속에 자신을 유지하며 종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그것이야 말로 「생명의 진지함」이다. 이윽고 가을이 찾아오면 생명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절박함에서 출발하여 진지함으로 일관한 삶이지만 끝내야 한다. 쓸쓸한 이별이 아니다. 단절적 종말이 아니다. 생명의 진정성은 이 삶과 죽음의 고리를 이으려는 성스러운 의식에서 완성된다. 나를 보냄으로서 우리의 큰 생명이라는 질서에 조응하고, 죽음으로서 생명의 절박함을 만들고 그 기운을 나의 씨앗 속에 담아 연속성과 다양성 즉 생명의 순환을 완성하는 것이다.

새싹 선생님 덕분에 가득 찬 마음을 두 손으로 받치고 춤추듯이 아침 산길을 내려왔다.

황보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