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불 지킴이 김홍규(43)씨. 하늘을 날고픈 어릴적 꿈때문에 고래불에서 경비행기를 몰며 바닷 바람, 갈매기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김씨의 꿈은 8살때부터 싹텄다. 소년 홍규는 이때부터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친구들과 들판에 서 신나게 놀다가도 하늘을 쳐다보곤 해서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기라도 하냐"라는 놀림을 받곤 했다. 그래도 홍규는 개의치 않았다. 어쩌다 비행기라도 날아 가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조종사는 어릴 적 누구나가 한번쯤 꿈꿔 보는 것이었지만 홍규에게는 영원한 꿈이었다.
고교에 진학했어도 조종사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고3때 마침내 공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그러나 신체검사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어릴적 맹장수술을 한 자국이 너무 커 전투기를 몰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충남대 식품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래도 홍규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입학과 동시에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에 가입했다. 꿈꾸던 비행기는 아니었지만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여갈 무렵 허전함이 밀려왔다. 패러글라이딩에 만족할 것인가, 이대로 조종사의 꿈을 포기할 것인가….
몇 날, 몇 일을 고민한 끝에 그는 결단을 내렸다. 1986년 대학 2학년 때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비행학교가 호주에 있었다. 혈혈단신 호주에 도착한 홍규는 곧바로 호주비행학교에 등록했다. 그 곳에서 7개월 동안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맹훈련을 쌓았다. 이어 뉴질랜드로 날아가 다시 2개월 간 비행훈련을 받았다. 마침내 홍규의 손에 자동차 운전면허증과 같은 자가용 비행면장이 주어졌다.
8살 소년의 꿈이 13년 만에 실현되는 순간, 비행면장을 받아든 홍규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두볼을 타고 흘렀다. 낡은 비행복에 얼룩진 땀의 흔적이 그 날만큼 자랑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 8살 소년이 지금은 43살의 중년이 돼 창공을 누비며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을 지키고 있다. 바로 김홍규 씨다.
김 씨가 고향인 충남 유성을 떠나 영덕으로 거주를 옮긴 것은 지난 2001년. 자신만의 비행공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늘 남의 비행기를 빌려 타다가 지난 1997년 고향 땅이 수용되면서 받은 토지보상금 3천만 원을 털어 67마력짜리 초경량비행기 '엔절피쉬'를 전격적으로 구입했다.
전국을 돌며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탁트인 공간과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고래불로 정했다. 곧바로 가족과 함께 인근 병곡면 괴시리에 둥지를 틀었다. 김 씨는 영덕군을 찾아가 협조를 구했다.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고래불에 '경비행기 체험'이라는 색다른 관광자원을 만들어 영덕을 항공레포츠의 산실로 만들자고 설득했다.
영덕군은 김 씨의 의견을 흔쾌히 받아 주었다. 군비를 지원, 활주로를 닦았다. 2003년 6월 동해안 최초의 경비행기 비행장이 탄생했다.
드디어 한 달 뒤 첫 비행이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초경량비행기 '엔젤피쉬'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참석자들의 입에서 탄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김 씨의 가슴은 처음 비행면장을 취득했을 때처럼 흥분감으로 터질것만 같았다.
'엔젤피쉬'는 고래불의 명물이 됐다. 대구를 비롯한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교육생들에게 비행훈련을 강습하고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에게 비행체험을 해주고 있다. 피서철 때마다 500여 명의 피서객들이 김 씨의 비행기를 타보기 위해 줄을 선다. 지상 400m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병곡들판과 칠보산, 고래불해수욕장의 푸른바다는 감동 그 자체다.
김 씨는 이와별도로 이웃 농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농사철만 되면 '엔젤피쉬'가 그 위력을 톡톡히 발휘한다. 낮게 비행하며 농약과 비료를 살포하면 사람이 한달 걸려 해야할 일을 불과 15분 만에 뚝딱 끝내버린다. 농민들은 '엔젤피쉬'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또 김씨는 지역내 소년소녀가장을 초청해 비행체험을 시켜주고 있다. 어렵게 살고 있는 청소년일수록 창공을 날아 드넓은 곳을 바라 보면 그 자체로 희망과 호연지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김 씨는 조만간 7천만짜리 경비행기 '메브릭'을 새로 들여 올 계획이다. 아내가 중국집을 하며 힘들게 번 돈으로 마련했다.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김 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려줘 천생연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김 씨의 아내는 4월이면 인근 괴시리에 칼국수집을 연다. 돈벌이가 시원찮은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려야 하기 때문.
그래도 불평이 없다. 아이들도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고 있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중학생인 딸은 김 씨를 따라 수차례 비행하기도 했다. 조종실력도 상당하다. 김 씨는 그런 딸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김 씨는 4천시간 비행기록을 갖고 있는 베테랑 조종사다. 영덕 출신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영덕을 사랑하고 영덕에 뼈를 묻을 각오를 갖고 있는 김 씨는 고래불해수욕장을 전국에서 손꼽히는 항공레포츠 공간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생활의 대부분을 비행기와 바닷 바람, 갈매기와 함께 지내고 있는 김 씨는 고래불 지킴이임을 자부한다.
명사20리로 유명한 고래불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사장과 깨끗한 해수욕장으로 이름난 피서지지만 이 곳에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김 씨는 짧고 힘있게 말했다. "하얀 파도가 모래톱을 철썩이는 해안가, 긴 백사장을 박차고 파란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여 고래불로 오라!"
영덕·이상원기자 seagul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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