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능성동, 봄이 아프다

대구의 동북쪽 끝에 능성동이 있다.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에 속해 있지만 이 동네엔 아직 수도가 들어오지 않았고,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시골의 논두렁길에서도 시켜 먹는다는 자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곳이다.

동사무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공산동사무소에서 곁다리 살림을 한다. 그러나 능성동에 수도가 없고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으며, 자장면이 배달되지 않아도 나는 이 동네에 산다. 갖출 것 다 갖춘 동네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팔공산에서 한 자락 슬쩍 비켜 뻗어 내리며 온갖 형상의 바위들을 안고 있는 명마산을 뒤로 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정겹기도 하지만, 내가 보고 느끼는 능성동의 매력은 아무래도 마을 앞의 솔숲이 아닐 수 없다.

교통량이 적지 않은 도로 곁에 솔숲이 있어 소음을 막아주고, 마을 안에 들어서면 솔숲의 장엄함이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를 이 동네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이 솔숲이다. 이 곳에 작은 집을 짓고 솔숲에 기대어 산지 반 십년이 넘었다.

그런데 봄이 오면서 기가 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름하여 백안~와촌간 도로확장 공사가 그것이다. 능성삼거리에서 와촌가는 길. 이 길은 산기슭을 따라 만든 것이라 구불구불해서 운전하기에 편한 도로는 아니다.

겨울엔 조금의 눈이라도 내리면 비탈길이 참으로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길을 곧게 하고 넓혀야 할 필요성이 있기도 하다. 그런 반면 그 정도의 불편은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흐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상쇄하고도 남을 일이라며 나는 즐겁게 이 길을 오가고 있다.

백번 천번 도로 확장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치자. 이 도로의 한 구간이 되는 예비군 훈련장 조금 지나 능성동 마을 앞 길가의 수백 년 된 솔숲 일부를 해치는 도로 설계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도로 영역을 표시한 깃발들을 보니 참으로 엄청난 수의 소나무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 숲을 스쳐 지나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나로선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하다.

도로가 좁고 굽어도 좋으니 솔숲을 해치는 도로 확장은 하지 말아달라고 하소연을 하고 싶다. 솔숲을 해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길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정도의 솔숲을 가꾸려면 수백 년이 걸려도 불가능한 일일 터인데 어쩌자고 솔숲을 해친단 말인가.

솔숲이 귀하다는 사실을 도로 설계자가 모를 리 없을 터, 내가 모르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도 안타까움은 달래지지 않는다. 설렁 바람이라도 불면 소나무들까지 가지를 흔들며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소리치는 것 같아 괴롭기만 하다.

지율 스님처럼 소나무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해서 막아질 일이라면 그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것이 내 집 앞의 일이라 차마 그럴 수 없고 이래저래 속만 끓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도로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소나무 사이로 핸들을 꺾을 때 들던 삭막한 도시를 떠나왔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늘 푸른 바람을 일으켜 나를 깨우던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한 겨울 눈 내릴 때 피던 눈꽃마저 볼 수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야 내 값싼 감상으로 치부하더라도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소나무들의 생명이다.

그 어디에라도 이식하여 푸름을 잃지 않게 해주어야 할 텐데 그것이 걱정이다. 이 봄날 솔숲 앞에 버텨선 포클레인의 허연 이빨이 금방이라도 소나무를 퍽 물어버릴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자연을 파괴하여 얻는 것이 인간의 편리함이지만 그 편리함은 우리에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최근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상 기후를 두고 '지구가 미쳤다'고 말하지만, 인간의 탐욕 앞에서 지구라고 어찌 온전할 수 있겠는가.

자연 학대에 대한 반성을 하며 개발된 지역을 자연 그대로 되돌리는 작업을 하는 곳이 많은데, 우리는 언제까지 편리함만을 쫓아서 무지막지하게 장엄한 솔숲을 훼손해야 하는가. 능성동, 올해 봄이 무지무지 아프다.

문무학(시조시인.대구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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