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카스트라토의 몰락

7~10세 사이에 고환을 제거하면 높은 소프라노톤의 소년은 성장하면서 폐용량이 커지고 횡경막 근육의 힘이 세져서 다소 연약했던 목소리는 음역이 넓고 우렁찬 소프라노로 발전한다. 이른바 카스트라토(거세남 가수)의 목소리는 여자보다 한 옥타브 더 높은 음으로 노래하는 것처럼 들려 16세기 유럽 무대공연에서 여자 역할을 남자 소프라노가 맡게 되었다.

17세기 초엽부터 18세기 후반까지, 특히 유럽에서 오페라나, 성가대 등에서 카스트라토는 여성 가수를 몰아내고 무대를 주도하게 된다. 17세기 초반 이탈리라에서는 바티칸 성가대 전원과 대성당의 성가대원 대부분이 카스트라토였을 정도였다.

최초의 카스트라토 스타인 발다사레 페리는 17세기 초엽 스웨덴과 폴란드의 전쟁까지 휴전시킬 정도로 그의 공연은 인기를 끌었다. 그가 폴란드 왕실에서 공연하자 스웨덴 여왕도 페리를 스톡홀름으로 초청했는데 양국사이에는 휴전이 선포되고 쌍방은 페리가 안전하게 전선을 넘을 수 있도록 호위까지 했다.

이같은 시대 분위기에서 카스트라토는 부와 출세의 길이였다. 가난한 부모들은 자식들이 노래에 약간만 소질이 있어도 거세시켜 음악학교에 팔아 넘겼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카스트라토는 몰락하게 된다. 역할을 망각한 '힘의 남용'때문. 카스트라토 유행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거세의 불법화도 아니고 교회의 반대도 아니었다.'음악의 중개자'역할을 넘은 것이 화근이었다.그들은 오페라 출연을 빌미로 공연을 좌지우지 했고 심지어는 작품을 멋대로 뜯어 고치기도 했다.

정부·여당의 몇몇 대학 정책을 보노라면 카스트라토의 몰락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최근에 추진하고 있는 실업고 특례입학 확대, 협조를 빙자한 2008학년도 입시정책, 현실을 무시한 교수 충원률 등 '교육의 중개자·조정자'역할에 그쳐야 할 일을 압박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교육 양극화 해법을 명분삼고 있지만 실업계 출신의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공자가 없어 대학들이 교수충원을 못하는데도 획일적으로 수치를 맞추라는 식이다.

하지만 10년내 수요감소가 불을 보듯 뻔한 사범대 정원감축, 대학통폐합, 대학경쟁력 향상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작 '칼'을 들이대야 할 것과 조정자 역할에 그쳐야 할 것을 착각하는 정부·여당의 역할은 카스트라토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디.

이춘수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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