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는 집권말기 2대 과제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체결과 양극화 해소를 내걸었다. 집권 후반기를 레임덕으로 허송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과제를 설정해 달성하려는 노력은 바람직한 일이다.
한미FTA체결은 그동안 진행해오던 개방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제조업과 금융업은 이미 거의 다 개방되어 있는 상태이니까 남아 있는 서비스 부문과 농업부문을 더 활짝 열겠다는 말이다. 양극화 해소는 '진보'정권으로서 당연히 관심을 갖는 사안이다. 정권초기부터 양극화 문제가 불거졌지만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정부로서는 뭔가 대안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이다. 과연 이 두가지 과제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살펴보자. 이번 달 아프리카 순방을 하면서 노대통령은 "개방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도산할지 몰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며 FTA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발언은 개방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개방을 통해 도산하는 사람들은 생활수준이 더 떨어진다. 반면 개방이 되더라도 경쟁력을 갖는 사람들은 생활수준이 더 올라간다. 두 그룹간 격차는 더 벌어진다.
개방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것은 이미 잘 확립되어 있는 사실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소득분배가 악화됐다. '경제기적'을 일군 동아시아국가들을 비교하더라도 처음부터 개방정책을 추진했던 싱가포르나 홍콩은 한국이나 대만에 비해 소득분배가 훨씬 불균등하다. 외국기업이나 인력이 자유롭게 오가게 하면 고소득자의 월급은 선진국 사장급 수준을 향해 올라가고 저소득자의 월급은 저개발국 근로자 수준을 향해 떨어진다.
그러면 양극화해소를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 정부는 세금을 올려 양극화를 해결해보려는 것 같다. 그래서 조세부담률이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고 스웨덴 모델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개방과 세율상승은 상충된다. 개방을 강화할수록 기업, 인력, 자금이 국경을 보다 자유롭게 넘나든다. 세금을 많이 내라고 하면 외국기업이건 내국기업이건 한국에 투자를 적게 할 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해외로 돈을 빼내려고 한다. 그래서 진보정권에서 개방정책을 취했던 영국 노동당, 스웨덴 사민당등은 개방정책과 함께 세율을 내렸다.
노대통령은 최근 국민들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이러한 정책의 불일치를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해명했다. "획일적 이론안에 현실을 집어넣으려 하지 말고 현실을 해결하는 해법에 좌파 이론이든 우파 이론이든 해결하는 열쇠로 써 먹을 수 있는 대로 써먹자는 것이며 그것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이 두가지가 실용적 관점에서도 양립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세금 문제에 대해 자신이 없다. 노대통령은 "(세율상승)우려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확실히 답을 할 수 없다. 다 정확하게 말씀드리기에는 준비가 안됐고, 전략적으로도 세금 내라고 말할 수 없다. 아직 세금 더 내라는 말은 아니고 한번 생각해보자, 연구해보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집권 후반기에 내놓는 정책을 아직까지 '연구'해야 하는 수준이라면 제대로 실행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세금문제가 그렇게 건드리기 어려운 사안이라면 참여정부의 정책에서는 양극화보다 FTA가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과제가 된다. 양극화가 더 심화되는데도 불구하고 FTA를 하겠다는 것이다. '좌파'정책은 정치적 슬로건이고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경제정책의 핵심이 된다.
필자가 만나게 된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왜 '진보'정권에서 한미FTA체결이 그렇게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하느냐고.
"글로벌스탠더드를 사회 각 부문에 제대로 도입해서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것"이라는 교과서적 답변이 많았다. 양극화에 대해서는 딱부러진 얘기를 들은 바가 없다. 현정부의 '철학부재(不在)'를 지적하는 분도 있었다.
필자의 단견(短見)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좋은 생각이 정부 내에 숨겨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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