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브로커 김재록 인베스투스 글로벌 전 대표의 로비의혹 사건이 정치권에 묘한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순히 김 씨가 특정 사안과 관련해 정관계에 로비를 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정치권 인맥이 여야를 망라해 있을 뿐 아니라 유력 대선주자 진영에도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어 이번 사건이 자칫 내년 대권 판도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점에서다.
이 같은 로비의혹사건이 터질 경우, 한쪽은 일방적 공격을 펼치고 다른 한쪽은 방어하느라 급급한 양상을 보이기 일쑤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여야 모두 "왜 이런 수사를…." 하며 마땅치않아 하는 모양새도 특이하다. 여야 각 정파와 일부 대선주자 진영은 검찰 수사가 자신들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갖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 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 각종 기업 구조조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만큼 DJ 정부의 적자를 자임하는 현 정부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대여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내부 사정은 복잡하다.
우선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의 경우, 이 시장과 가까운 한 의원이 수억 원을 수수했다는 서초동(검찰)발 의혹제기와 함께 현대차그룹 양재동 연구개발센터 인허가와 관련한 서울시 로비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 시장 측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은근히 검찰 수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눈치다.
더욱이 이 사건의 당내 진상조사단장에 박근혜(朴槿惠) 대표와 가까운 이한구(李漢久) 의원이 임명된 것도 두 사람의 대권 경쟁과 맞물려 묘한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만일 이 사건의 수사 파장이 이 시장쪽으로 쏠릴 경우, 진상조사단을 누가 이끄느냐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의 중진 또는 초선 의원들과 김 씨와의 친분설과 함께 유력 대기업의 컨설팅 수수료 관련 의혹, 유력 카드회사 설립 관련 의혹 등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헌재(李憲宰) 씨와 김 씨와의 친분설이 곧바로 현 정부 경제통 출신 정치권 인사들의 연루설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터져나온 로비의혹 사건이 여권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점에서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 측의 초조한 기색도 감지된다.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성추행 파문이나 이 시장의 '황제 테니스' 논란이 급속히 가라앉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여당 측은 불만이 많다.
그러나 27일 우리당의 비공개 지도부 회의에서 한 핵심 인사가 "이번 사건이 야당과 관련됐다는 정보가 있다."고 말한 뒤 수세국면에 몰려 있던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대한 역공을 취하고 나선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민주당은 김 씨가 DJ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인물인데다 국민의 정부 시절 각종 로비 의혹이 있는 것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해 불만이 많다. 특히 김 씨의 동생이 한화갑(韓和甲) 대표의 2002년 당내 경선을 도와줬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가 한 대표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되고 있다.
고건(高建) 전 총리 측도 예외는 아니다. 고 전 총리 측은 한나라당 김정훈(金正薰) 정보위원장이 '김재록 씨 사람들이 고 전 총리 캠프에도 가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급히 보도자료를 내고 "고 전 총리는 캠프를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김재록 사람들이 고 전 총리 캠프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고 전 총리 측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최근 열린우리당의 '고건 때리기' 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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