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손남주 作 '나무의자'

나무의자

손남주

등산길 숨가삐 오르다가

반 백 년은 족히 살았을 소나무 밑둥에

무거운 다리를 털썩 꺾었다

나이테로 꽉 찬 둥글의자가

내 엉덩이에 딱 맞다

핏기는 다했지만

비와 햇살로 되려 탱탱해진 둥치가

나를 버티기엔 아직 여유가 있다

잘린 몸뚱이와 팔들은

어디에 유용하게 쓰였을지 몰라도

내게 이만큼 편안함을 준 의자도 드물었다

우연히 만나는 수많은 길목에서

나도 남에게 의자가 된 적이 있었던가

뭉게구름 두어 점 피어나는 쪽으로

문득 바람 한 줄기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솔잎처럼 흔들었다

모든 사람이 보람 있는 일을 하며 보람 있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보람 있는 일과 삶'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의 생활 철학이 그만큼 빈곤하다.

이 시는 '보람 있는 일과 삶'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소나무 밑둥처럼 '나이테로 꽉 찬 둥글의자'가 되는 삶이다. 그래서 '우연히 만나는 수많은 길목에서' 편안함을 주는 삶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보람 있는 일과 삶'은 스스로 '의자'되는 것이 아니라 '의자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 가치다. 전도된 우리 시대의 가치관에 대한 아픈 성찰의 시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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