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모정

'수천수만리/ 한 생을 돌아온 것이다/ 그 바닷가 모래 언덕/ 캄캄한 파도소리/ 내가 끌고 온 육신의 낙인은/ 다 지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산고의 흔적을/ 온몸으로 지우고/ 그렇게 다시 떠나는 수천수만리/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을 것이다'.

바다거북은 먼 바다의 깊은 해저에서 살아가는 갑각류의 동물이다. 그러나 번식기가 되면 산란하기 좋은 해변을 찾아와 모래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한번에 100여개의 알을 낳는다. 그리고는 다시 구덩이를 흔적없이 덮어놓고 오랜 삶의 터전인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은밀한 행위는 새끼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다른 동물들로부터 알을 보호하려는 어미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정말 힘들고 엄숙한 산고일 것이다. 만삭의 몸으로 그 먼 바다길을 건너와서, 행여나 누가 볼새라, 캄캄한 그믐밤, 혼자서 모래 둔덕을 파헤치고, 먼동이 트기전에 쫓기듯 산란을 끝내고 떠나야 하는 절박감.

그 속에서도 육신을 끌고 왔던 흔적은 지우고 또 지워놓고, 태어날 새끼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머언 바다로 떠나야 하는 어미의 심정은 얼마나 무겁고 고단했을까.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성애는 생명보다 강한 것이리라.

우리의 어머니는 자식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다. 결혼을 하면 반드시 자식을 생산해야 하는 것이 여자로 태어난 보람이며 자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이다.

요즘도 잊을만 하면 비닐봉지에 담겨진 영아들이 강변둔치에 버려져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자식을 버려야 하는 산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리 사회의 의식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나 출산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우리 선조들은 칠거지악 중에서 자식을 생산하지 못하는 죄가 그 으뜸이라 했는데, 그런 관념도 희박해졌다. 자식 때문에 왜 부모가 희생을 당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세대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이웃에서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가 힘들어져 가고 있다.

자식도 한낫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바다거북 보다도 종족번식에 대한 욕구도 가지지 못한 하급동물이 된 것일까. 바다거북과 같은 동물적인 본능마저 상실해 버린 것인가.

무엇 때문에 자식을 낳아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바로 내 형제며 이웃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땅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이 오늘도 머언 나라로 입양을 떠나고 있다.

김환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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