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티타임

대학을 졸업했을 때, 나는 내 삶이 시험 준비를 하는 데 허비되었음을 깨달았다.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 활동을 하는 과정에도 시험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나는 시험이 없는 삶을 갈망했으므로....

이 무렵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를 일주했다. 그 때 나는 프랑스인들의 국민적 자부심과 기질·유머를 갖춘 유명한 만화책이자 그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아스테릭스'를 우연히 구해서, 그 중 '아스테릭스, 영국에 가다' 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에 따르면, 로마인이 지배하기 전의 영국인은 정중하고, 비감정적이며, 미지근한 맥주를 즐겨 마셨다. 또한 이교도인 켈트족들은 날마다 오후 다섯 시에 모든 것을 중지한 채, 뜨거운 물에다 우유를 타서 마시곤 했다.

다행히 아스테릭스가 그들에게 얼마의 허브잎을 주었는데, 이것이 첨가됨으로써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차 마시기 풍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국에 차(茶)가 전래된 진짜 유래는 이보다 덜 낭만적이다.

런던은 차가 인도·스리랑카·중국으로부터 하역되는 주요 항구였다. 이와 관련, 오늘날에도 런던에서 '코크니'를 흔히 만날 수 있는데, '코크니'란 "have a cup of cha(차를 드세요)"라는 런던 사투리를 즐겨 쓰는 전형적인 런던 사람을 가리킨다.

영국에 커피가 전래되기 전까지 영국인들은 찻집에서 아시아의 차 주산지로부터 들어온 갖가지 차 마시기를 즐겼다. 따라서 차는 영국인들에게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오후 네 시의 '티타임'은 모든 사회 계층에서 지켜졌다.

빅토리아 여왕이 왕관을 쓰고 처음으로 한 말이 "차 한 잔과 타임지를 가져 올 지어다"였다고 한다. 미국 출신 영국 작가인 헨리 제임스는 인생에 있어서 오후의 '티타임' 의식보다 더 유쾌한 시간은 없다고 말 한 바 있다.

따라서 내가 한국에 왔을 때 특유의 차 문화를 발견하고 매우 행복해 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한국의 차 문화는 영국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그 의식이 까다로운 것 같지만, 두 문화권 모두 복잡다단한 일상에서 한 걸음 비켜나 여유로움에 젖는 것은 공통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전통 찻집이 더 인기를 얻고 있으며, 커피숍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홍차와 허브차 등을 음미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한국에 사는 영국인에게 대단한 행운이다. 자, 이제 모든 것을 멈추고 차 한 잔을!

앤드류 핀치(경북대 영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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