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시간의 문제-한시성(限時性)

수갑을 차고 있는 사람이 언제 수갑을 차고 있다고 의식하는가? 그렇다. 수갑을 풀려고 할 때이다. 그때야 비로소 손을 묶어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속박의 괴로움을 증폭시켜 절망에 이르게 한다. 동시에 수갑을 풀려는 모든 지혜와 노력을 동원하게 한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시간을 보게 된다. 가장 극단적이고 개인적인 시간의 체험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인식하기 전까지 우리에게 시간은 없다. 시간의 지배를 실감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이 절대적 한시성(限時性)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광적인 노력이 시작된다. 권력과 돈과 과학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자기마취와 마약으로 해방감을 얻으려고도 한다. 이런 노력들은 결국 실존적 절망으로 이어진다. 참선, 요가수행, 선도수련과 같은 다양한 수행법이 탄생한 주요한 배경 중의 하나가 한시성의 극복이다. 인간의 역사는 한시성 극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독교와 근세과학의 아버지인 뉴턴의 시간은 직선적이고 절대적이다. 시간이 절대시작점(창조의 순간)을 출발하여 절대마침점(종말의 순간)을 향해 가는 동안에 어떠한 변수도 개입할 수 없다. 한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 또한 상대적이다. 또한 빛과 더불어 중력장의 영향을 받는다. 부피는 없고 질량만 존재하는 상태, 즉 블랙홀 주변에서는 빛과 공간은 물론 시간도 왜곡된다. 윤회가 핵심개념 중의 하나인 불교적 시간은 직선적이지도 않고 절대적이지도 않다. 수행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가기도 하고 앞당겨 가기도 한다. 시간의 비가역성과 누진성을 거부한다.

1968년 국제도량형위원회(CGPM)는 원자량 133인 세슘원자(Cs)에서 복사(輻射)되는 복사주기의 91억 9천263만 1천770배를 1초로 정하였다. 그러나 과연 하루살이와 1년생 식물, 그리고 인간의 시간이 동일한 것일까? 지구를 세포핵쯤으로 가지는 우주적 생명체의 시간이 우리의 것과 동일할 것인가?

한시성은 영원과 절대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한시성에 대한 상시적인 자각상태를 유지한다면 범사에 감사하고 겸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황보 진호 하늘북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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