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원더풀 아메리카

FL 알렌 지음 / 박진빈 옮김 / 앨피 펴냄

카드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도박판. 젊은 도박사가 패를 모으기 시작한다. 카드는 마구 뒤섞여 그 진가를 알 수 없고 어떤 패가 모아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더욱이 도박사는 마지막에 쥐게 될 패가 승산이 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하고 있었다.

1차 대전의 종결. 승전국이면서 채권국으로 명실상부하게 세계 제1의 강대국으로 등장한 1920년대의 미국은 긴장감이 흐르는 도박판에서 패를 모으는 젊은 도박사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금주법, 알 카포네, 플래퍼, 할렘 르네상스, JP 모건, 대활황장, 스윙재즈, 진화론 논쟁, 잃어버린 세대, KKK단, 빨갱이 사냥, 섹스 스캔들, 최초의 라디오, 단발머리, 포드 자동차, 린드버그, 베이브 루스, 블랙 투즈데이, 대공황···. 이 시대를 대표하는 그러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현상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었고, 기대와 꿈이 있었던 시대가 1920년대의 미국이다.

'원더풀 아메리카'는 장차 '미국 역사상 특별한 시대'로 평가될 바로 이 시기를 서술하고 해석한다. "대부분의 역사책은 1920년대를 전례 없는 호황기로 묘사하면서 그 끝에 위치한 증시 붕괴에 대해서는 마치 마술사의 모자에서 토끼가 툭 튀어나오는 것처럼 혹은 달력 한 장을 뜯어내 버리면 그만이라는 듯 바로 앞장과 단절시켜 놓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 버린다."

대호황과 대공황. 저자는 경제적인 면으로만 측량할 수 없는 이 시대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들여다본다. 특별한 의미와 독특한 풍취를 지닌 무언가 다른 요소들에 시선을 모은다. 거기에는 1918년 1차 대전의 종결부터 1929년 주식시장의 대폭락까지 미국의 사회를 채웠던 들뜸, 낭만, 모순에 대한 비공식 기록이 녹녹히 녹아 있다.

놀라운 것은 저자 알렌이 이 책을 쓴 시점이 1931년이라는 점이다. 소용돌이치는 현장에 서 있으면서도 흥분하지 않고 모든 것을 관조하고 타이르듯 침착하게, 때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과 비판을 곁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란 사실도 모르고, 불과 2년 뒤에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도, 또한 그가 펼치게 될 '뉴딜'도 알지 못한 상태인 저자의 통찰력은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