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목소리로 자신의 뜻을 펴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지만 따지고 보면 남의 말을 옮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식이나 정보를 체계화하기 어려운 데다 자기만의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아는 바다. 거의 매일 글을 써야 하는 기자들 사이에 '기사만 쓰지 않으면 좋은 직업인데'라는 우스개가 나오기도 한다. 소설로 이름을 날리는 최인호마저 오죽하면 글쓰기를 '업보와 원수 같다'고 했을까.
◇자기의 뜻을 실어 펴는 수단이 말과 글이다. 하지만 말은 뜻을 배반하기 십상이며, 글로 뜻을 새롭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므로 '글쟁이'들도 언제나 '전전긍긍'이다. 요즘 잘나가는 소설가 김훈은 아직도 연필을 꾹꾹 눌러 원고지를 메우는가 하면, 우리나라 큰 문학상은 석권하다시피 한 김원일은 단편소설 한 편을 큰 노트 두 쪽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서 여러 차례 고친 뒤 노트북으로 다시 쓴다고 하지 않는가.
◇요즘 글쓰기 관련 책이 많이 나와 화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 분야의 책만도 올 들어 열 가지 이상이나 나왔으며, 잘 읽히는 모양이다. 이 가운데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 부양'(동방미디어), 정희모'이재성의 '글쓰기의 전략'(들녘) 등은 교보문고 인문 분야 판매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올바르게 표현하기 위해 글쓰기에 매달리는 성인들이 크게 늘어난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분야의 책들은 크게 나눠 두 가지 부류다. 그 하나는 '네 멋대로 써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식의 원론적'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글쓰기의 힘' 등의 글쓰기 방법론을 가르쳐 주는 책들이다. 오늘날 글쓰기의 입지가 계속 위축'악화돼 온 점을 생각하면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글쓰기 퇴조는 감성화'즉흥화'경박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쾌락이 아닌 성찰, 배설이 아니 정제로서의 글쓰기가 활기를 찾아야 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문장은 존재의 증명'이 되는 셈이지 않은가. 더구나 글을 쓰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바람이 '요원의 불길'이기를 바란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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