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바뀐 새 명함을 받았다. 기분이 새롭긴 했지만, 이것이 과연 나를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사각형 종이에는 단지 회사와 직위, 전화번호가 적혀 있을 뿐이다.-물론 명함의 본래 목적이 업무를 위한 도구이지만, 처음 보는 모든 이에게 자신을 소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지 않은가-
어린 왕자가 말했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합니다."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는 붉고 예쁜 벽돌집을 보았어…"라고 하면 그분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른들에게는 "10만프랑짜리 집을 보았어." 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해야만 "오, 정말 굉장한 집이구나" 하고 감탄합니다.
사람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그가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세계관이 어떠한지, 어떤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사는지 설명하면 안 된다. 그가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직위는 무엇인지, 그가 사는 아파트가 몇 평인지를 이야기 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에 대해, 그가 다니는 회사와 직위와 그가 타고 다니는 차의 배기량 말고는 아는 것이 없어져가고 있으며, 심지어 '나'에 대해서도 내가 다니는 회사와 직위 같은 것들 말고는 아는 것이 없어져 간다.
그와 나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회사와 직급과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으로 그를 평가하고 나를 드러내게 된다. 나조차도 나를 설명하지 못하기에, 나를 설명해 줄 좋은 대학이 필요하고, 나에게 맞지는 않지만 남들이 인정하는 회사 명함이 필요하게 된다.
강남아파트 가격이 심상치 않고 정부는 학군제 조정이라는 안까지 들고 나온 모양이다. 그러나 해결책은 아닌 듯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고, 학교와 회사를 통해서만 자신을 설명 할 뿐인 상황이 계속되는 한 강남과 S대학에 대한 쏠림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서, 지역 간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 사실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 명함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내가 누구인지 말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알아야 한다. 어린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다르게 가르쳐야 한다. '어느 학교 몇 학년 누구입니다.'가 아니라 '어떤 꿈을 가진 어떠한 가정의 몇째 입니다.' 라고 소개 하게 해야 한다.
명함을 바꾸기 위해 나 자신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고, 내 아이를 충분히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을 알게 된다면, 최소한 그러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면 강남 집값도 잡히고 세상은 좀 더 행복해질 것이다.
백운하 (주)크레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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