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냐? 문화재 보호냐?…공사 '올스톱'

금융 손실 '눈덩이'…초고속 공사 불가피

얼마 전 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한 시행사는 난감한 처지에 빠져있다. 아파트 부지에서 청동기 시대 유적지가 발견돼 착공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주시점까지 30개월 정도 남아있지만 당장 공사에 들어가더라도 '초고속' 공사가 불가피하다.

업체 관계자는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몇 달 더 걸릴 경우 계약금을 돌려주거나 입주시기를 못 맞추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조사가 시작된 지난 해부터 지금까지 잠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지난 2003년 대구 중구의 한 오피스텔은 분양 후 유물이 발견돼 계약금을 되돌려주고 재분양을 한 사례도 있다.

경북에서 골프장을 건설 중인 한 레저업체. 시공에 앞서 문화재 조사를 하기 위해 지난 해 말부터 조사기관마다 찾아다녔지만 기관들로부터 "신청이 밀려있으니 무조건 기다려라."는 얘기만 들었다. 업체 관계자들은 우여곡절 끝에 6월쯤 조사가 가능하다는 한 대학박물관을 찾아내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업체 관계자는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면 수십억 원을 그냥 날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보호법상 3만㎡이상 대형공사의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화재 조사에 대한 '피로증'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발굴전문기관 수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각종 국책사업, 아파트 건설 등 대형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져 조사 순서를 기다리려면 1년 가까이 걸리는게 보통이다. 지역 발굴전문기관의 경우 현재 40건 가까이 밀려있어 더이상 신청을 받을 수 없을 정도다. 발굴기관 관계자는 "지금 신청을 하더라도 언제 조사에 나설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문화재 조사를 피하기 위해 사업 부지를 2~3개로 분할해 공사에 들어가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공사 지체에 따른 금융 비용 증가 등으로 대구·경북에서는 연간 수백억 원, 전국적으로는 수천억 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되고 있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지금처럼 사업이 지체되는 사례가 빈발할 경우 지역 경제활성화 측면에서 경남, 울산, 충남처럼 연구원 산하 부설로 발굴기관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 조사를 빨리 받게 해달라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지만 업체와 조사기관의 사적인 계약이어서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문화재청은 '발굴 내실화' 명목으로 오는 7월부터 조사기관 등록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밝혀 관련업계로부터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기획탐사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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