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지발 좀 묵고 살자' 는데

요즘 어느 언론사 사장은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의 명함 받느라 눈코 뜰 새 없다고 했다.

너도 나도 시장감, 도지사감, 구청장감, 의원감이라 자부하며 내놓고 가는 선거 홍보용 명함에 찍힌 캐치프레이즈도 가지각색.

이런저런 그럴싸한 문구들 중에 가장 눈에 띄고 '이거다!' 싶었던 구호는 모 후보가 내건 '지발(제발) 좀 묵고 살자'였다고 했다. 뉴라이트니 뉴레프트 따위 정치권 '먹물'들의 좌'우파 이념 논쟁도 중요할지 모르지만 다수 민중은 일단 제발 제대로 먹고 사는 궁리나 좀 해 달라는 바닥 민심을 제대로 꿰뚫었더라는 것이다. 날고 기는 정치꾼이 선거철에 신출귀몰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 봤자 백성들을 배고프게 만들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정치의 기본 순리를 콕! 찍어 외친 셈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도 '백성은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며, 의식(衣食)이 풍족해야 영욕(榮辱)을 알고 곳간이 비고 의식이 피폐하면 예절과 신의와 염치가 풀어져 나라가 무너진다'고 했다.

역대 우리 정치 지도자 중에서 그러한 백성 다스리는 치세의 순리를 가장 잘 꿰뚫고 실천했던 지도자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36년 전 4월에 새마을 사업을 제창한 직후 '새마을 운동'이란 제목으로 남긴 친필 유고(遺稿)에서 그는 새마을 운동을 이렇게 정의했었다.

'새마을 운동, 쉽게 말하자면 '잘살기 운동'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 빈곤 탈피다. 소득이 증대되어 부유해지고 보다 더 여유 있고 품위 있고 문화적인 생활, 우리의 사랑하는 후손들을 위해서 잘사는 내 고장을 만들겠다는 데 보다 더 큰 뜻이 있다.(이하생략)'

그가 유신 정치의 흠결을 껴안은 채 갔음에도 여전히 다수 국민의 가슴에 되돌려 놓고 싶은 인물로 남아 있게 하는 통치 철학이다. 지금 그가 생전에 남긴 그런 새마을 정신과 통치 철학이 중국땅에 불어닥치고 있다.

2004년 후진타오 주석은 새 국가 목표로 '새마을(신농촌) 건설'을 내걸었고 올해도 역점 사업으로 채택했다. 중국 산둥성 옌타이시 간부들은 부산 원주 제주를 돌며 새마을 운동 현장을 찾았다.

칭다오'지안 시 정부, 산둥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윈난성의 공무원들도 우리 대구에 새마을 운동 관련 교육을 받으러 온다. 장쑤성에는 '새마을 사관학교'를 개설, 연간 1만 명씩의 새마을 지도자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도 사상과 이념 중심에서 백성을 배부르게 하는 민생 정치의 대도(大道)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개발도상 경쟁 국가들이 빠짐없이 벤치마킹하는 박정희식 새마을 정신과 민생 우선의 통치 철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낡은 세력이 우리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의 실용적이지 못한 소수 좌파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다.

다산 정약용은 그런 세력이 들으라는 듯 이런 경고를 했었다. '임금의 그릇된 정치가 퇴폐하매 백성이 곤궁하게 되고 백성이 곤궁하매 나라가 가난하게 되고 나라가 가난하매 부역과 세금의 징수가 가혹해지고, 세금 징수가 혼란하매 인심이 떠나오게 되고 인심이 떠나매 천명(天命)이 가 버리게 되느니…'

예비후보 명함에 '지발 좀 묵고 살자'는 구호가 나올 만큼 백성이 곤궁하고 재개발 부담금 같은 갖가지 세금들만 위헌 시비가 나올 정도로 '가혹하게' 나오는 이 나라의 인심과 천명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 눈을 감아도 보이는 듯하다. 일부 좌파 의식에 매몰된 사람들이 박정희 깎아내리기에 정신이 팔려 있을 동안 박정희 따라배우기에 발 벗고 나선 중국은 눈 깜박할 새 어디쯤 앞서 가 버릴까. 박정희의 새마을 통치 철학을 정치 논리의 과거사로 덮으려는 좌파 의식보다 새마을을 배우며 우리를 뛰어넘고 있는 중국이 더 두려운 이유다. 5'31선거, 선택의 답은 여당 후보든 야당 후보든 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데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