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시각(視覺)의 종말(終末)

인간의 감각기관 중 시각(視覺)이 우위를 차지한지 오래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며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것은 사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시각은 대상을 인식하는 핵심적인 경로인 셈이다.

미디어 학자 맥루한(M. McLuhan)은 매체를 인간 감각기관의 연장으로 해석하였다. 라디오는 '귀'의 연장이요 신문은 '눈'의 연장이며 TV는 인간 '오(五)감각' 기관의 연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미디어의 기술적 형식 그 자체가 메시지(The Medium is the Message)'라고 하는 기술결정론적 미디어관을 피력하였다.

그의 기술결정론적 미디어관은 TV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들이 스스로는 자신의 감각기관과 이성적 판단능력을 바탕으로 메시지를 수용 또는 거부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TV라는 매체의 기술적 형식으로 인하여 매우 수동적(passive)인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시각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와 무엇을 믿고 있는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그것은 '본다(see)'는 것이 단순히 어떤 사물을 감각(感覺)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유(先有) 지식이나 인지세계를 통하여 감각된 사물의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은 매체환경 하에서 사물의 개별성에 대한 매개(媒介)는 사라지고 사물에 대한 이미지가 인간 시각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미지란 새롭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을 의미하며 모든 이미지는 사물을 보는 시각을 구체화시킨다. 그 결과 우리의 시각은 이런 이미지를 통하여 정형화되고 일반화되어 결국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이미지 과잉 시대에 인간 시각의 종말은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 마치 통조림처럼 가공된 사물들의 이미지를 통하여 사물의 실체가 재구조화되고 이러 과정이 몇 번 반복되기도 전에 실제 사물은 사라지고 이미지만이 부유(浮遊)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비가역적(非可逆的)이라는 사실이다. 이미지를 통해 사물을 보는데 익숙한 세대들은 실제 경험이나 인간적 접촉 보다는 매체를 통하여 양산된 이미지만을 추구하게 되며 이미지 안에서만 사물의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 그들의 잃어버린 시각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 셈이다.

DMB니 IPTV니 하는 뉴미디어들이 계속하여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양산해내고 있다. 그러한 이미지에 대한 주체적 소비를 유혹하는 상술로 인하여 우리의 시각은 더욱 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가고 있다.

오창우(계명대학교 미디어영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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