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김세현 作 '거미집'

거미집

김세현

거미처럼 그는 허공에 집을 지었다

나는 땅이 튼튼해요 졸랐지만

그는 땅은 너무 낮아 믿을 수 없어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지을 거야

나는 땅에 내려오라 자꾸 달랬지만

그는 뒷걸음치며 허공의 계단을 올라갔다

바람이 불어요

투창 같은 별들이 당신 몸에 박혀요

그가 지은 집은 투명유리처럼 빛을 뿜고 있었지만

허공에 떠 있는 집은 아무래도 무서워

덜덜 떨고 있는 나를

그는 따끈한 구들목에 앉혔지만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삐걱이는 집

창문이 날아다니고

비안개가 온 방을 적시고

발 딛는 자리마다 패인 구름 웅덩이

지상의 불빛에 흐린 눈물 글썽이는데

아! 나는 잠들지 못하고

달의 가슴에 화석처럼 박혀 있다

'집'은 '나'의 완성된 세계며 동시에 '삶의 세계'다. 물질지상주의 가치관으로 세우는 '집'은 지상(현실)에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런 눈으로 볼 때, 허공에 지은 '거미집'은 드높은 '정신세계'가 아니라 '허공(無)'일 뿐이다.

물질지상주의 시대일수록 현실 너머의 세계인 '허공'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비록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삐걱이'고 '창문이 날아다니고/ 비안개가 온 방을 적시'더라도 '투명유리처럼 빛'나는 정신의 '거미집'을 세우기 위해 고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있어, '잠들지 못하고/ 달의 가슴에 화석처럼 박혀' 이 시대의 어둠의 한 구석을 밝혀야 한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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