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문화가정'…대구人 '자리매김'

"두 개의 꿈이 모여 더 큰 꿈을 꿉니다."

다문화가정이 대구의 새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등 결혼이민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 다문화 가정의 절대 다수는 동남 아시아계. 결혼을 통해 '코리안드림'을 이룬 다문화가정. 그들은 대구사람이 되길 꿈꾸고 있다. 그리고 2세들이 진정한 대구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주노동자에서 사업가로

파키스탄 이주노동자 말리크(40) 씨. 지난 2000년 부인 신정례(38) 씨와 결혼하면서 불법체류자에서 '식당 사장님'으로 코리안드림을 이뤘다.

부부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 팔달시장을 찾은 말리크씨는 컴퓨터 자수업을 하던 신 씨에게 한눈에 반해 시간을 묻는 고전적 작업으로 사랑을 키웠다.

부부에게는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한국생활 9년째를 맞는 말리크 씨는 단기비자를 받아 대구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였다. 쉽게 말해 '불법체류자'. 출입국사무소 단속에 걸릴 때마다 강제출국 당해 2번이나 대구에서 '쫓겨났다'. 신씨를 만나고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2001년 7월 생이별한 부부는 2002년 2월에서야 다시 만났다.

"2001년 9월 10일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 남편은 어렵게 대구 입국을 허가받아 홍콩에 대기중이었요. 그런데 출국 당일날 9·11 테러가 터진거예요. 테러용의자가 무슬림들로 밝혀지면서 파키스탄 사람들은 모조리 외국여행이 통제됐죠. 그 후 5개월이나 남편을 만나지 못했어요."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강제출국전 달서구 이곡동에 마련한 7평짜리 작은 식당이 개점 휴업 상태를 맞았던 것. 알음알음 찾아오던 남편친구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5천만 원이나 빚을 졌다.

하지만 2002년 파키스탄으로 직접 날아간 신 씨가 말리크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다시 대구에 정착하면서 모든 게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7평짜리 식당은 72평으로 커졌고 50평짜리 식료품 가게까지 새로 열었다.

부부가 운영하는 72평짜리 식당은 '알라딘 레스토랑'. 파키스탄인 이주노동자들의 최대 보금자리다.

"하루 4시간 밖에 자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친구들 뒷치닥거리를 해야하기 때문이죠. 일자리를 수소문하고, 사고 수습까지 도맡고…. 그래도 사람은 계속 모여들었죠. 입소문이 번져 파키스탄, 인도 바이어들이 꼭 한번은 찾는 식당이 됐어요."

이제 부부에게 남은 마지막 소원은 2세 갖기. 3년이 지나도록 아기소식이 없는 부부는 요즘 매일 같이 산부인과를 찾고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게 한편으로 두렵다. 다문화가정 2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 때문. 대구에서 서로 연락을 주고 받는 같은 처지의 부부는 10쌍이 넘는다. 대구 여성과 결혼한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은 결혼 후 한국 국적을 취득해 식당, 식료품가게를 운영하거나 중고기계 무역업으로 자수성가했다.

하지만 신 씨는 "지난주 한 부부가 빨래를 너는데 동네 아이들이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진 집이 있었다."며 "대구사람들의 이유없는 '왕따'에 고통받는 가정도 결코 적지 않다."고 씁슬해 했다.

부부는 "2개의 문화가 어울려 상생할 수 있다."며 "다문화가정은 꼭 무슨 문제가 있을 것처럼 생각하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이주여성에서 어머니로

대구 남성들과 결혼한 이주여성은 우리 사회의 편견을 넘어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당장 스스로도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2세 출산 후 자녀교육을 위해서도 우리말, 우리문화를 익히는 일이 당면 과제가 된다.

성서공단 내 인도네시아노동자 쉼터 이돌라카페. 김대근(45)·이다(31.인도네시아) 씨 부부가 딸 지혜(3)와 함께 행복을 키우는 곳이다.

인도네시아에서 7년간 선박업을 했던 김 씨는 지난 2002년 이다 씨와 결혼해 대구에 정착했다. 대구 달서경찰서 인도네시아 통역관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김 씨는 부인과 딸 때문에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지만 말못할 고민이 있다. 일에 쫓겨 부인과 딸에게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너무 힘들어 다른 교육기관을 찾아봤지만 믿고 맡길 만한 곳이 마땅찮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딸 교육이 가장 큰 고민이 됐습니다. 지혜는 칭얼거릴때도 인도네시아 말만 씁니다."

김 씨는 "애가 아파 병원에 갔을 때 문제의 심각성을 통감했다."며 "오죽하면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딸을 인도네시아에 보낼 생각을 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김씨 부부의 한글말 교육에 도움을 주고 있는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김경태 목사는 "다문화가정을 직접 찾아가는 맞춤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근로자 회관에서 만난 한 중장비기사(39.대구 남구 대명동)는 "뭔가 모자라는 사람이 동남아 이주여성과 결혼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선을 봐도 신부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시시 때때로 집을 비워야 하는 직업을 어떤 여자도 좋아하지 않더군요."

고민 끝에 베트남 신부와 선을 보고 신혼 살림을 차렸지만 역시 '대화'가 가장 큰 고민. 신부를 데리고 한국말 교육기관을 여럿 알아봤지만 정규 기관은 대학 단기 프로그램이 유일했고, 그나마 월 38만 원을 웃돌아 신부 보내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것.

그는 "정부에서 하는 일이 너무 없다."며 "이주여성들에게 체계적으로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가르칠 수 있는 정부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구에도 이달부터 이주여성과 2세를 지원하는 결혼이민자센터가 들어서지만 아직까지 실태조사조차 전무한 상황.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경북연구원에 이주여성과 2세에 대한 정책 수립 용역을 의뢰했다."며 "조만간 해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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