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6개월째. 프랑스와 달리 겨울이 너무 추워 싫었는데 드디어 따뜻한 봄이다. 그동안 서울, 부산, 경주 등 몇 군데를 둘러보긴 했지만 주말에 시간을 내, 여유롭게 멀리 떠나기는 처음이다. 대구답사마당(www.taedabma.com)과 함께 떠난 사천 및 남해군 일대 여행. 길가에는 벚꽃이 활짝 폈으며 산 중턱에는 진달래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바닷가 산마루 곳곳에도 아름다운 갖가지 봄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버스 안에서부터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한국의 대자연 속으로 이내 빠져들었다.
지난 일요일 아침 대구 도심의 동아쇼핑앞. 대구시민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집단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놀랍고 신기하기도 하다. 가족단위로 적어도 2~3일가량 휴가를 떠나는 프랑스 여행문화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대구를 출발한 버스는 2시간30여분 만에 경남 사천시 선진리성에 도착했다. 성 주위에는 벚꽃이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남해바다를 끼고 성 주변에 핀 벚꽃, 동백, 목련 등은 프랑스에선 볼 수없는 광경. 프랑스는 해변이 주로 모래사장이기 때문에 바닷가 주변에서 꽃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한국에서 열번째로 큰 섬인 창선도와 삼천포를 잇는 창선·삼천포 연륙교는 현수교, 아치교, 평교 등 4개의 다른 형태의 다리가 연속으로 펼쳐져 장관을 이뤘다. 프랑스에서 깊은 계곡사이를 잇는 다리는 많이 봤지만 이처럼 한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다리를 연결해놓은 것이 이채로웠다. 이곳 다리 위에서 아름다운 섬들을 바라보니 한국의 남해바다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점심은 생선미역국이었다. 처음 맛보는 음식인데도 입안에서 미역과 생선살이 사르르 녹아내려 맛있었다. 하지만 생선뼈를 가려내는 것이 힘들었다. 옆 사람이 "후루룩, 쩝쩝" 너무 큰 소리를 내 귀에 거슬리기도 했다.
곳곳이 일본 해군을 무찌른 한국의 전쟁영웅, 충무공 이순신과 관련된 사적지라는 점도 놀랍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대첩에서 퇴각하는 일본 해군을 뒤쫓다 장렬하게 숨진 관음포 해역이 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락사(李落祠). 벚꽃, 목련, 진달래, 동백꽃 등 봄꽃들이 활짝 핀 이곳엔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영혼이 맴도는 듯 했다. 10분가량 산책하기에도 좋은 코스였다.
영웅을 위해 사당을 모시고 그 유해를 안장한 곳에 또다른 사당을 지은 후손들의 마음가짐은 본받을 만하다. 프랑스 역시 국가적인 영웅에 대해서는 남다른 예우를 하지만 한국처럼 지극정성이지는 못한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 6개월동안 시신이 안치된 충렬사(忠烈祠). 故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 사당입구에 걸려있었다. 보천욕일(補天浴日). 무슨 뜻인지 몰라 물어보니 하늘이 도와 일본을 욕보이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이 침략국 일본을 패배시켰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는 글귀였다.
아름다운 현수교인 남해대교 아래서는 당시 모습대로 복원한 거북선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거북을 본 따 무적 전투함을 만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발하다. 평화로운 남해 앞바다를 바라보며 대한민국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기도했다.
남해 망운산 화방사는 자연속에 묻여있는 가장 한국적인 절이었다. 태국에서 본 절은 대부분 도심 안에 있으며 모든 걸 황금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해 사치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었다. 반면 한국은 조용한 곳에 있어 명상을 하기에도 괜찮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도로 양쪽에 벚꽃이 만개한 꽃터널을 지났다. 보기만해도 장관이다. 한국의 봄은 프랑스의 봄보다 더 화사하고 볼거리가 많아서 좋다. 화사한 한국의 봄처럼 다음주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다빗 제르뚜(David Gerthoux.27.프랑스 문화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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