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분양시장 가격 구조조정] (하)고분양가 원인은 알박기

수성구에서 아파트 신규 분양을 위해 부지 매입 작업을 진행중인 A 시행사 대표는 몇 달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부지 가격이 치솟아 작업을 중단하자 지주들이 당초 합의한 가격대로 땅을 팔겠다며 계약 재개를 요구해 석 달 전 계약금 지급에 나섰다가 이중 일부 지주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며 계약금 계좌를 일방적으로 폐쇄한 때문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전체 부지 중 계약금이 20~30%라도 나가면 사업을 중단할 수 없는 것을 악용한 일부 지주들이 다른 지주를 선동해 계약 종용을 한 뒤 자기 땅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려고 하고 있다."며 "이 탓에 사업이 몇 달째 표류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A 시행사가 매입 작업을 진행중인 부지의 공시지가는 300만 원 내외로 실거래가도 400만 원 안팎인 땅이다. 시행사 측은 당초 사업 계획에 부지 매입비로 600만 원을 계상했지만 현재 금액은 알박기 지주 탓에 평균 30%정도 올라간 상태. 시행사 대표는 "올라간 부지 매입비에다 사업 지체에 따른 금리 부담 등으로 수익성을 내기 위해서는 욕을 먹더라도 분양가를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아파트 사업 부지마다 알박기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2, 3년전부터 사회 문제화됐던 '알박기'가 이제는 '일반화'가 된 상태. 주택 사업 관계자들은 "문제가 되는 고분양가의 근본 원인은 터무니없는 땅값에 있다."며 "사회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향후에는 토지 수용권을 가진 공공기관만이 아파트 분양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알박기, 고분양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

600만 원대에 머물던 수성구 중대평형 아파트 평당 분양 가격이 1천만 원을 돌파한 것은 불과 5년 사이. 그동안 분양가의 30% 정도를 차지하던 건축비는 2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올랐다. 결론적으로 보면 건축비 상승분을 빼고 난 300만 원의 행방이 결국은 고 분양가의 주범인 셈이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최근 들어 금융 수주 심사를 해보면 수성구에서 분양한 단지 중 시행사 수익금이 5%를 넘는 단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2~3% 수익금이 나는 사업장도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와 은행 관계자들이 밝히는 분양가 1천만 원의 원가는 건축비 25~30%와 금융비용 10%, 각종 분담금과 감리비, 모델하우스 설치비 등 사업비로 들어가는 돈이 20%, 시행사 수익이 5% 정도. 나머지 돈(35~40%)이 결국은 토지 보상금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우방의 한 임원은 "평당 분양가가 500만 원이던 90년대만 해도 수성구에서 토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였고 시공사 수익금만 20% 정도였다."며 "결국 고 분양가의 주원인은 급상승한 토지비 탓"이라고 밝혔다.

현재 수성구를 볼 때 아파트 대상 부지의 평당 보상비는 중심상업지역은 평당 2천만 원, 3종 지역은 1천 500만 원까지 올라간 상태로 불과 2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폭등했다. 물론 땅값 상승의 주범은 전체 부지 중 10% 미만 정도인 알박기 지주들이다.

대구에서 3차례 아파트 분양을 한 시행사는 "몇 년 전만 해도 시행 사업은 괜찮은 분야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시행사나 시공사가 분양가를 올려 폭리를 취한다고 하지만 실제 고 분양가 수익의 대부분은 알박기 지주들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속출하는 알박기 전문 시행사

아파트 대상 부지마다 등장하는 알박기 지주에 이어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사업부지 매매를 통해 전매 차익을 얻거나 알박기만 전문으로 하는 '무늬만 시행사'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모 시행사가 작업을 끝낸 부지를 사들여 아파트를 분양한 B시행사는 "평당 500만 원에서 시작한 땅값이 시행사 2곳을 거치면서 700만 원 가까이 올랐다."라며 "시행사 2곳을 거치면서 100억 원 정도가 추가 지출됐다."고 밝혔다.

1군 건설업체 관계자는 "시행사가 처음부터 토지 작업을 거쳐 분양까지 마치는 곳은 전체 분양 단지 중 30%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나머지는 시행권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시행사를 통해 최종 분양 시행사로 넘어가며 이 과정에서 10~20% 정도의 땅값 상승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알박기를 전공으로 하는 시행사 등장도 분양 시장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다.

시행사 관계자들은 "대구지역에서 알박기만 전문적으로 하는 시행사들이 몇 곳이 있으며 이중 2, 3곳은 수성구를 포함 사업성이 있는 부지 곳곳에 알박기를 해놓고 있다."면서 "사업 예상 부지에 들어와 땅 몇 필지를 사놓고 시행사 간판을 내건 뒤 결국에는 몇 배의 차익을 남긴 뒤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 간다."고 말했다.

◆알박기 근절 대책

현재로선 땅값 상승을 막을 만한 처방책이 없는 실정이다. 용적률에 차이를 둔 종 구분에다 도시정비법 등으로 사업 대상 부지가 얼마 되지 않고 알박기 지주를 처벌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조차 없는 탓이다.

특히 지난해 1월 알박기 지주에 대해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오히려 알박기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의 업계들의 목소리.

시행사들은 "3년 이내 매수 토지에 대해서만 매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3년 이상 땅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준 꼴이 된데다 매도 청구권 행사 기간이 빨라도 6개월 이상 걸려 대부분 시행사들이 청구권 행사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도 사업 기간 지체에다 기업 이미지 타격 등의 부작용으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다.

지역 모 주택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땅 매입을 하면서 도를 넘은 알박기 지주 10여 명에 대한 증거 수집을 했지만 이중 실제 소송을 한 것은 한 건 밖에 없다."며 "나머지는 분양 이후에 소송할 계획이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주택업계는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인 고분양가를 잡기 위해서는 세제 강화나 거래 제한 조치가 아니라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매도 청구권 강화 방안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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