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든 못 살든, 큰 민족이든 작은 민족이든 어느 민족이나 나름대로 자긍심을 가질 만한 역사적'문화적 유산들이 있다. 우리 한국인의 자랑거리는 어떤 것들일까. 아마도 대다수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한글', '고려 청자'등을 꼽을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이 한 가지도 빼놓지 않을 것이다. '단일 민족'.
○…이 중 '단일 민족'은 우리에게 한층 각별한 느낌을 갖게 한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단일 민족'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자부심과 함께 지고(至高)한 사명감으로도 여겨졌다. '한 피 나눈 한 민족'은 언제든 우리를 눈 깜짝할 새 한 덩어리로 뭉치게 만드는 키워드였다. 지구촌을 놀라게 했던 2002년 월드컵의 그 거대한 거리 응원은 그 대표적인 예다. 평소엔 모래알 같다가도 때가 되면 우리 스스로도 놀랄 만큼 집단적 괴력을 발휘한다.
○…이런 우리 앞에 홀연 하인스 워드라는 미국의 한국계 혼혈 스포츠 스타가 나타났다. 한 살 때 엄마 품에 안겨 미국으로 건너가 그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마침내 미국의 슈퍼볼 영웅이 된 사람. 29년만에 고향을 처음 방문한 워드를 두고 나라 안이 온통 들뜬 분위기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서울시로부터는 명예시민증도 받았다. 어딜 가나 워드의 성공담이 화제다.
○…명예서울시민증을 받은 워드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흘렀다. 보는 이들도 콧등이 시큰해졌다. 한편으론 펄벅 재단을 찾은 그 어머니 김영희 씨가 "내가 그렇게나 힘들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니…."하며 씁쓸해 하는 모습에선 우리네 알량한 인종 차별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진다.
○…하인스 워드의 힘은 대단했다. 대통령은 "혼혈인들이 훌륭하게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고, 2009년부터는 교과서에도 '다인종 문화'를 수용하는 내용이 담겨진다. 이럴 땐 '빨리빨리'의 힘이 느껴진다.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를 지낸 이광규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이 최근 한 라디오 프로에서 "한국인에겐 다른 민족의 피가 40% 정도는 섞여 있다."고 했다. 통계청의 '2005년 혼인'이혼 통계'에도 작년 국제 결혼이 4만 3천121건으로 1년 전보다 무려 21.6%나 늘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다인종 사회로 바뀌고 있다. '단일 민족'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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