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술평론가 권원순씨와 한우육회전문점 '토담집'

<단골맛집을 찾아서 鼎談情論>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왼쪽에서 유독 식탁에 팔을 괸 채 놀란 표정의 제자가 있습니다. 유다입니다.

"너희 중 누가 날 배신할 것이다"라는 스승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12제자들의 표정을 묘사한 이 그림은 은연중에 배신의 장본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빵(살)과 포도주(피)만의 식단과 만찬이라는 절제된 시공간적인 구성을 통해 다빈치는 유다의 배신을 모티브로 그리스도의 장엄한 부활을 표현코자 한 건 아닐까요.

미술 평론가 권원순(67)씨. 먹을거리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적게 먹는 것이 몸엔 더 유익하더라는 그를 한우육회전문점인 '토담집'에 초청, 미술과 소식(小食)습관에 대해 들어봅니다.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거나 특별히 싫어하는 음식도 없어요."

그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태도다. 대신 무르고 국물 많은 음식보다는 야물고 딱딱한 음식에 수저가 자주 간다.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마른 멸치, 다시마, 굴비 등은 즐겨 먹는 찬들이다.

"항상 밥은 더 먹고 싶을 때 숟가락을 놔라."는 부친의 밥상머리 교육 덕에 고교시절부터 소식을 철저히 지켜온 권씨는 요즘도 밥그릇에 한두 술의 밥은 꼭 남긴다. 그 결과가 50년째 한결같이 유지해온 54kg대의 체중이다. 최근 받은 건강검진서도 모든 수치가 정상치 범위 내의 아래쪽에 머물었다고 한다.

취재수첩 한 장이 넘어 갈 무렵 음식이 차려졌다. 맛 평을 부탁하니 육회 한점을 집어 입안에서 한참을 오물거리더니 한 번 더 맛을 봤다.

"무미(無味)의 맛이네. 고명으로 올린 미나리의 향긋한 맛도 좋고…. 붉은 쇠고기 살과 푸른 미나리의 색 조화도 식욕을 당기고. 감칠맛이 뛰어나 부담 없이 많이 먹을 수 있어 좋아요."

맛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담백하고 깊은 맛을 평론가답게 무미(無味)로 표현한 것 같다.본래 영어교사였던 권씨가 미술평론가의 길로 들어선 건 삶에서 극적인 순간이 있었기 때문. 35살 때 우연히 길을 가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의식과 혼절의 경계에서 뇌리를 스쳤던 생각이 '인생은 길지 않구나.' '남긴 것이 없다.' 그리고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인물 캐리커처'였다는 것.

의식을 차리자 권씨는 삶을 찬찬히 되돌아 본 후 중대 결심을 한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일과 후 데생과 미술이론을 독학하다가 더 깊이 공부하려 대학원에 진학,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이론공부에 매진했다.

"내 생애에서 그 때처럼 열심히 공부하며 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1981년부터는 대학 강단에 섰다.

"현대는 디자인 시대죠. 음식도 담는 그릇의 형태에서 재료 고유의 색깔조화, 조리 형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디자인 작업의 일종입니다."

단순히 맛으로만은 경쟁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보기 좋은 음식에 수저가 한번이라도 더 가듯이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최후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잣대가 된다. 따라서 음식의 완성에는 당연히 색채의 조화도 중요하다고 권씨는 말한다. 최근 요식업에서 푸드 스타일링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추세와 다르지 않다.

권씨는 "미술사를 훑어 봐도 마네를 주축으로 한 인상파가 나오면서 캔버스에 색채혁명이 일어났듯이 음식도 색깔의 배치에 따라 얼마든지 맛과 모양을 달리 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토담집

대구 수성구 두산동 들안길 삼거리에 있는 '토담집'은 한우 육회와 주먹시(소 앞가슴살) 참숯구이의 맛이 뛰어나 미식가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변태숙 사장이 친정어머니에게서 배운 솜씨로 만드는 육회는 기름기가 없는 소엉덩이 살을 엄선해 미나리와 파, 다진 마늘, 배즙에 버물어 낸다. 이 곳만의 숙성노하우로 한층 부드러워진 육회는 입안을 감도는 감칠맛이 특징. 참숯향이 물씬 밴 주먹시 구이는 연하고 고소한 고기 맛을 자랑한다.

특히 음식에 쓰이는 양념류는 주인이 일일이 시골장을 돌며 직접 구입하고 간장과 된장 등 장류도 집에서 담구어 오래 묵힌 것을 쓰기 때문에 깊은 맛을 내고 있다.

놋그릇에 담아내는 전주비빔밥은 토속적인 나물을 많이 담아 다른 곳과 차별화를 두고 있다. 나물을 조리할 때도 고명으로 올리기 전 참기름으로 한번 볶아 내기 때문에 씹을수록 진미를 더한다. 문의:053)765-7610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작성일: 2006년 04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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