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대구 사람들이 아직도 '중앙공원'으로 알고 있는 경상감영공원에는 지금 벚꽃이 한창이다. 경상감영공원의 봄은 벚꽃이 피면서 활기를 띤다. 관찰사들의 선정비가 늘어선 비림(碑林) 앞의 벚꽃 터널을 쌍쌍이 걷는 연인들이나, 벤치에 삼삼오오 앉아 쉬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우리의 문화유적지에 만발한 벚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공책과 연필에다 카메라까지 들고 두리번거리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를 하러 온 것이 틀림없다. "벚꽃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이곳에 왜 벚꽃을 많이 심었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으로 난감하다.
경상감영공원은 1601년에 설치되어 영남의 수도로 기능했던 '경상감영'의 터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공원으로, 단순한 휴식공간으로서의 공원이 아니다. 영남의 정신적 고향이며, 대구의 아이덴티티 형성의 터전이었던 문화유적공원이다.
경상감영을 에워싸고 대구의 상징으로 존재하였던 대구읍성(邑城)이 일제에 의하여 무참히 파괴되고, 감영의 많은 문화재들이 훼손되어 제 모습을 잃게 된 것도 가슴 아픈 일인데, 그 자리에 주인처럼 들어앉아 다른 모든 꽃을 압도하고 피는 벚꽃이 왠지 못마땅한 것은 필자 한 사람만의 느낌일까?
이 곳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로는 선화당 앞의 회화나무가 좋겠는데, 이 회화나무는 한 쪽 가지를 쇠기둥에 기댄 채, 하늘 높이 자란 메타세쿼이아의 그늘에 가려 시름시름 앓고 있다. 우리의 문화유적지에 우리 고유의 나무들이 무성한 것이 너무 자연스러울 법한데, 하늘은 메타세쿼이아가 차지하고, 땅은 벚꽃 이파리가 뒤덮고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마뜩치가 못하다.
가능한 한 빨리 수종을 개체하여야 한다. 물론, 멀쩡한 큰 나무를 베어내고 어린 나무를 심어 언제 키울까를 생각하면 아득한 일일지 모르지만, 읍성을 허물고 객사를 뜯어내 민족정기와 대구의 얼을 말살하던 그 자리에 사쿠라가 무성하게 피어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고 법률로 정한 것도 아니고, 그 원산지가 또한 제주도라는 설도 없지 않으나, 이맘 때 일본 사람들의 거의 광적이라 해도 좋을 하나미(花見:꽃구경) 열풍을 보노라면, 사쿠라가 일본의 상징 중의 상징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우리의 얼이 깃든 자리에는 우리와 오래 고락을 같이 해온 고유 수종이 번성해야 한다. 민족의 정기를 세우기 위해 그렇고, 고장의 아이덴티티를 일깨워 가기 위해 그렇다.
박이달 (대구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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