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1월 10일 독일 베를린 인근 포츠담시에서는 독일 공공노조(VER.DI)와 사용자 대표들 간의 심야 마라톤 임금협상이 있었다.
이틀간에 걸친 협상은 어느 누구도 물러설 수 없다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고, 어느 한쪽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면 지난 92년이후 유지해온 공공부분 무파업 기록이 깨질 상황이었다.
공공노조의 위력을 감안할 경우 최대 파업의 위기가 예고되고 있었다. 이날 새벽 0시30분 브시르케 공공노조 위원장과 사용자 대표인 오토 쉴리 내무장관은 한발씩 물러나 임금을 최고 4.4% 인상하는데 합의하였다.
이번 협상은 노사간의 모든 갈등을 테이블 안에서 대화와 상생으로 해결하는 독일 노사문화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이러한 상생의 문화는 2004년 7월에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최대노조이자 240만 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는 IG메탈(독일금속노조)은 독일 금속사용자단체와 임금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양자의 주장은 좀처럼 좁혀 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7일간의 긴 협상은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임금 인상 없는 근로시간의 연장. 노조측에서 전격적으로 사용자단체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날 노조위원장인 위르겐 페터스는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수용배경에 대해 기업경쟁력이 노조의 성장과 고용창출에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최근 우리에게도 상생문화가 결실을 거둔 사례가 있었다.
GM대우가 5년전 정리해고 했던 직원 전원을 복직시키기로 한 것이다. 복직도 단순 복직이 아니라 해고당시 호봉을 인정해주고 자녀 학자금 같은 복지비도 원상회복할 예정이라고 한다. 2001년 정리해고 당시를 생각하면 참으로 꿈같은 얘기이다. 사원아파트에 살다가 엄동설한에 갑자기 길거리로 내몰린 근로자와 가족들의 절규, 갓난아기를 등에 업은 채 밖으로 나온 젊은 아낙네들이 경찰의 최루가스에 맞서며 울부짖던 장면은 부실경영의 참혹한 결과를 일깨워 주기에는 너무나 가혹하였다.
정리해고자를 전원 복직시키기로 한 것은 2002년 10월 닉 라일리 사장이 노조에 "회사상황이 나아지면 해고근로자를 전원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그대로 이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조의 적극적 협력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부평공장은 강성노조였다. GM이 극한적 노사갈등을 우려하여 인수를 거부할 정도였으니 그 심각성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GM대우 출범이후 2004년 한차례 부분파업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분규가 없었다. 그 결과 GM의 전 세계 사업장 중에서도 가장 경쟁력 있는 사업장으로 인정받았고, 자동차 판매량의 급증에 따라 당연히 일손이 필요하게 돼 정리해고자 모두를 재입사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용안정은 투쟁적 노사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상생의 관계에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즉 사용자는 신뢰를 구축하기 위하여 경영의 투명성을 높였고, 장기적 비전을 숨김없이 제시하였다. 노동자도 희생을 감수하면서 생산성 향상과 해고근로자의 복직을 위하여 한뜻으로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한 구석에는 아직도 적대적 노사관계, 그리고 노정관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구태가 여전히 남아 있다. 툭하면 총파업이다. 직장폐쇄다. 라는 제목들이 여전히 언론을 장식하고 있고, 아직도 상대방에게 공을 넘기는 소모적인 투쟁이 되풀이 되고 있다.
세상은 변한다. 아니 세상은 달라졌다.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관계는 화해와 상생의 관계로 돌아섰다. 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과 노조는 망해 갔고, 노사가 화합하고 상생하는 분위기. 노사공생의 모델을 창출하지 못한 나라는 경쟁력에서 뒤쳐져 갔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고, 그 중심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이호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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