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박주영
철쭉이 당기는 팔공산 순환도로
봄비가 촉촉이 적막한 오후를 달리고 있다
건드리면 화다닥 불꽃으로 번질까
빗방울이 꽃들의 행진에 제동을 거는 한낮,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부인사 사잇길로 접어들고 있다
무슨 짐을 안고 끙끙대는 한 남자의 아랫배는 지구만해서
팔공산이 잠시 머물다 간 듯하고
또 다른 사내는 뒤따르는 여자의 달라붙게 입은
바지 아랫도리를 힐끔거린다
발 빠르게 앞서가던 한 여자가 그 남자의 모자창을 콱 눌러버린다
그들의 행동과 행동 사이에 풍매화 벙그는 소리가
여린 껍질을 깨고 있다
이런 날은 내 속에서도 투명한 숨결 가진 푸른 색의
꽃대궁 하나 올라 왔으면 좋겠다
한낮의 한가로운 정경을 잠시 그친 빗방울이 멀거니
뒷짐 보고 있다
이 봄날, 팔공산 순환도로에는 생명들이 서로를 희롱하고 있다. 꽃과 꽃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희희낙락하고 있다. 그들의 관계가 자칫 '건드리면 화다닥 불꽃으로 번질까', 아슬아슬하지만 아직은 적당한 거리가 있다. 그들의 시선은 주로 상대의 아랫도리를 향한다. 사내의 시선은 '여자의 달라붙게 입은/ 바지 아랫도리를 힐끔거리'고 '한 여자가 그 남자의 모자창을 콱 눌러버리'는 정경이 웃음을 자아낸다. 아랫도리를 향하는 그들의 희롱에 '풍매화 벙그는 소리가/여린 껍질을 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경을 잠시 그친 빗방울'이 창조주의 눈길로 보고 있는 것이다.
순결한 자연의 희롱은 생명 탄생의 장엄한 의식인 것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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