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태수 칼럼] 돌아와야 할 '紳士와 신사정신'

'품위 있는 체면으로 자기 명예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을 '신사'라 한다. 버나드 쇼는 그렇게 말했다. 오르테카는 '단정하고 예의 바른 정신, 즉 깨끗한 신체와 깨끗한 영혼에만 관심을 가지는 인간'을 그런 유형으로 봤다. 푸코의 경우 '도덕적 반성'에서 '가짜 신사란 자기의 결점을 남에게나 자기에게 속이는 무리이며, 진짜 신사란 그걸 완전히 인식하고 고백하는 사람'이라고 썼다.

신사정신에 대해서도 오르테카는 '아무리 심각하고 위급한 상황에 부딪쳐도 삶의 압력과 고뇌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유희에 몰두할 수 있는 정신적 자세'라 했다. 위급한 상황에 서도 여유를 가진다는 건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악조건에도 침착하고 신중하게 주어진 상황을 바르게 꿰뚫어보는 냉철한 지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드골의 한 일화는 진정한 신사의 모습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어느 날, 그가 강연회 초청을 받고 엘리제궁을 나섰다가 도중에 잠시 연회장에 들르기 위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반(反)드골 전선의 한 저격범으로부터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 전혀 다치지 않은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식들, 사격술이 엉망이로군."이라며 목적지로 향했다고 한다.

동서고금의 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쯤에서 그 정신을 대충이라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충실한 자기성찰'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용' '정의 구현을 위한 자기희생' '논리적 사고와 정확한 판단' '위급한 상황에서의 여유와 용기' 등이 그 덕목들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어지러운 사회에서는 자유와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사회 질서와 정의 구현에 이바지하는 '건전한 시민의 전형'이 각별히 요구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해 과연 '지금도 그런 신사들이 많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는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실로 실망스럽다. 각종 게이트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이 보이는 일들이 다반사다. 브로커 김재록 씨 경우만 하더라도 일말의 절망감까지 안겨준다. 브로커들이 어떻게 그토록 활개를 치면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게이트들이 말하듯이, 권력에 끈을 달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이들에게 선을 댔기 때문이었다면, 우리의 정치 풍토는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어떤 집단이나 개인의 이득을 위한 수요와 공급이 이어졌으므로 그런 비리와 부패 구조가 날개를 달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끊임없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충동'을 앞세우는 정치에 불을 붙이고 있다. 그것도 오로지 목적을 겨냥한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여전히 브로커와 게이트가 난무하고, 연줄이면 안 통하는 게 없는 정부라면 이젠 나아지기를 기다리기보다 국민 스스로 정신 차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지금 정부의 몇몇 각료들을 보더라도 도무지 신사로 보기 어렵다. 얼마 전, 변양균 예산기획처 장관의 '작은 정부론 무색' 보도에 대한 언론 탓하기와 막말에 가까운 비난 쏟아내기, 김진표 교육부총리의 자립형 사립고에 관련한 '한 입 두 말하기', 추병직 건교부 장관의 추태 등은 제 정신으로 한 일들이었는지…. 자리 지키기도 좋지만 고위 공직자로서 부끄럽지 않은지 묻고 싶다. 특히 변 장관의 지나친 반응은 청와대의 언론 공격 독려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어서 어떤 변명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도 마찬가지다. 각종 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받아 차명계좌로 관리했다면, 도둑이 어떻게 도둑을 잡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눈여겨보면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비신사'들이 활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국가청렴위원회가 로비스트의 자격이나 행위의 대상·주체 등을 공청회를 통해 확정짓고, 올해 안으로 로비를 양성화하는 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과연 제대로 그런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내 엄벌하고, 더 나은 길을 열어 나갈는지도 지켜볼 일이다. 지극히 영리한 얌체족들의 파렴치한 행위로부터 굵직한 직함을 가진 지도층 인사들의 비신사적 행위들까지 사라지기 바라는 마음은 신사라면 누구나 한가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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