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 삼성의 8천억 원 사회 헌납

삼성그룹이 지난 2월7일 8천억 원의 재산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에버랜드 편법 증여 의혹을 둘러싼 차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한국 대표기업에 걸맞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자성과 다짐까지 곁들였다. 이후 두 달이 넘었지만 논란만 무성할 뿐 과연 삼성의 헌납이 정당한 것인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분명한 결론이 보이지 않는다.

▶ 의도와 배경에 대한 시각

삼성그룹의 8천억 원 사회 헌납은 '대규모 기금을 사회에 환원해 공익사업에 활용되도록 함으로써 그동안 안기부 X파일에서 드러난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과 국내 대표기업으로서 독주해온데 대한 사회 일각의 반삼성 분위기를 극복해나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삼성은 시민단체들로부터 이 회장의 자녀들이 지분 취득을 통해 얻은 것으로 지적돼온 차익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회에 헌납키로 함으로써 그동안 에버랜드 CB 및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인수 등으로 불거져 나왔던 편법 상속에 대한 논란과 반감을 헤쳐나가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신문 해설기사)

이에 대해 상당수 언론들은 삼성의 발표를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삼성의 기부가 정부와 시민단체의 삼성 때리기에 굴복한 것이라는 쪽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기업인들이 자발적으로 부의 사회 환원에 나서고, 국민이 이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반기업 정서의 완화, 기업 투자의 활성화, 고용 및 소비 증가, 기업 이익 증대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나 시민단체 등이 기업을 압박해 항복을 받아내는 식으로 사재 헌납을 유도해서는 곤란하다.(중략) 삼성 측이 시민단체와 국민의 뜻을 받아들였다거나 법으로 따지기보다 국민 정서를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대목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노무현 정권과 일부 시민단체 등의 집요한 때리기에 삼성이 밀렸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신문 사설)

그러나 삼성의 조치는 그동안의 태도에 비해 어느 정도 진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편법 승계와 왜곡된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이 아니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판여론 무마용, 대국민 로비, 세금 안 내고 성금 내는 격이라는 냉소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실제로 삼성측은 8천억 원 가운데 이재용 씨 등 이 회장 자녀들이 편법증여로 얻은 추정이익 1천300억 원을 포함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재용 씨의 주식을 시가로 환산했을 때 사회환원 금액은 실제 이득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나온다.'(신문 분석기사)

삼성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인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런 책임이 제도화하지 않으면 자선사업에서 끝나게 된다. 자선은 나중에 생각이 바뀌어 그만두면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삼성은 세금을 더 내서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노조를 인정하고, 조건반사적인 탈규제 주장을 넘어서는 생산적인 규제를 인정하는 등 근본적인 태도 변화를 보여야 한다.'(장하준 교수, 신문 인터뷰)

▶ 8천억 원 용도와 운영 논란

삼성그룹이 8천억 원을 헌납한다고 발표한 지 두 달이 돼도 쓰임새와 운용 주체 등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헌납 의도를 두고 평가가 분분한데다 누구도 선뜻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신문은 '파리스의 사과'라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8천억 원 사회 헌납 발표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잔치에 던져져 트로이 전쟁의 빌미가 됐던 파리스의 사과에 비유할 만하다는 이야기가 재계에서 나돌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라고 쓰인 이 사과를 그리스의 가장 유력한 세 여신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툰 것이 결국 당시 문명세계의 최대 전쟁으로 이어졌듯이 삼성의 헌납 발표는 본의 아니게도 우리 사회가 지닌 가치관의 차이와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은 8천억 원의 용도 문제에 왈가왈부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김진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기금을 운용할 재단을 설립할 때까지 교육부가 맡아 처리하되 재단 설립 절차를 밟아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 등의 재원으로 쓰자는 개인적인 의견을 냈다가 여론의 된서리를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의 사회환원기금 8천억 원의 처리 과정에 정부가 나설 것을 지시했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표를 듣고 삼성공화국이란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이 내놓겠다는 돈이 사상 최대 규모일지라도 일개 기업의 사회환원기금 뒤처리에 정부가 일조하라는 지시를 대통령이 내리니 이것이야말로 삼성공화국이란 징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인터넷 언론 칼럼)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기금 운용의 1차적인 책임은 삼성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실장은 기부 문화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도 사회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기금을 던져버리듯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지금이라도 출연하는 쪽에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조건 없는 헌납이라는 게 너무 모호하고 무책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신문 기사)

헌납 발표 후 별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는 삼성을 나무라는 이야기도 적잖다. 주목해서 봐야 하는 내용도 눈에 띈다. '정작 기금을 내놓은 당사자인 삼성은 관망하고 있다. 구체적인 운영 주체를 언급할 경우 기금 관리에 관여한다는 비난을 받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 삼성 쪽의 판단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8천억 원 처리를 둘러싼 논란이 나쁠 게 없다는 분위기다. 과거 잘못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둘러싼 진정성 논란을 잠재우는 대신 8천억 원 사회 헌납 효과를 극대화시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신문 기사)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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