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4월 15일 경남 진해의 덕산 비행장, "해병은 단결하여 온갖 고난을 이겨 유사시에 대비할 최강부대를 이루도록 교육훈련에 정진하자"는 신현준 초대 해병대 사령관의 훈시가 있었다.
'귀신잡는 해병'의 탄생. 당시 해병대는 사령부 요원 15명, 근무중대 70명, 정보대 10명, 2개 소총중대 270명 등 380명으로 편성됐다. 병사들은 해군신병 13기 중에서 인수한 해병대 신병 1기생(303명)이 그 근간이었다.
1948년 발생한 여순반란사건 진압과정에서 그 필요성이 제기돼 창설된 특수부대가 해병대였다.그러나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해병대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장비는 모두 일본 99식 소총이었고, M1소총은 교육용 1정밖에 없었다.
훈련도 일본 해군과 육전대식, 미군 방식이 혼합돼 진행됐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이런 점을 강력한 훈련으로 극복했다. 완전무장으로 천자봉까지 휴식없이 달리며 정신력과 인내력을 배양했다. 단체훈련과 경기 등으로 심신을 연마했다.
그리고 해병대는 창설 1년여 만에 남한과 북한의 전쟁에서 그 실력을 맘껏 발휘할 기회를 잡게됐다. ▲1707년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출생 ▲2003년 일본에서 범죄 저지른 한국인, 일본에 첫 신병 인도.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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