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남준의 기억' 사진전 여는 임영균 중앙대 교수

"우리가 백남준을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예술가로서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단군 이래 한국 출신의 세계인으로서 예술역사에 가장 위대한 삶의 족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30일까지 갤러리신라에서 열리는 사진전 '백남준의 기억'의 작가 임영균(51) 중앙대 사진학과 교수는 지난 1월 타계한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고 백남준 씨의 예술적 업적을 이렇게 칭송했다. 그리고 그가 진정 남긴 것은 '자유로운 정신과 과학적인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그는 항상 그 시대의 첨단매체를 가지고 예술을 표현한 인류학자이면서 미래학자같은 분이었습니다. 60년대에는 처음 나온 비디오를 70년대에는 로보트를, 80년대는 인공위성을 이용해서 전세계 시청자들의 텔레비전을 통해 안방으로 침투했죠. 90년대에는 레이저를 예술의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 항상 무당 등 토속예술로부터 아이디어를 접목·대비시켰습니다."

임 교수와 고 백남준 씨의 인연은 1983년 초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있던 임 교수가 고인에게 전화를 걸면서 시작됐다.

학비를 충당하려고 한국인 야채가게에서 일을 하던 임 교수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예술가들을 알릴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이탈리아 식당에 배달을 갔는데 '뉴욕에 한국인 예술가는 없냐'길래 고인의 이름을 대니 '백남준은 일본사람이 아니냐'고 반문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1982년 고인과 전화통화를 한 임 교수는 1983년 고인과 가슴 설레는 첫 대면을 하게 됐다.

이때 찍은 사진이 1984년 1월 1일 뉴욕타임스에 소개되면서 임 교수에게는 공식적인 뉴욕 데뷔작이 됐다. 임 교수는 그 뒤로 존 배·임충섭·홍신자 등의 예술가 50여 명을 촬영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고인과의 인연은 물론 2000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볼 때까지도 계속 됐고 이젠 작품 속 추억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진계에 관한 이야기도 물어봤다. 임 교수는 "지금 한국사진(예술·문화)은 국내 대기업의 힘으로 세계에서 재인식되고 있는 중입니다. 서구사진을 모방하지 않고, 우리의 정서를 승화시킨 사진을 세계는 기대하고 있죠."라고 대답했다.

"1965년 국내 최초로 국제사진전이 열릴 정도로 지역 사진계의 전통은 강합니다. '사진의 서울'이라는 대구에서 자라 자연스레 사진과 접하게 됐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죠. 지금도 김태한·김일창·장진필 교수 등 사진계 원로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임 교수가 말하는 지역 사진계의 평가이다.

사진 예술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예술가들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하며, 사진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임 교수는 "역사적인 대구에서 사진을 공부한다는 것을 긍지로 여겨도 좋을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단다. 1930년대 최계복·안월산 선생 시대 이후 훌륭한 사진가들을 숱하게 배출해왔기 때문. 지금도 서울에는 강운구 최재영 권태균 등의 훌륭한 사진가들이 맥을 이어가고있다.

임 교수는 "대구의 큰 자산인 문화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해 조금이라도 경제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래서 올 가을에 열리는 사진비엔날레가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 "대구의 사진 전통에 비춰볼 때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 임 교수의 생각이다. 다만 대구사진비엔날레가 대구 사람이 중심이 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며 "대구의 역량을 키워나갈 것"을 주문했다.

한편 '영원한 다다이스트' 백남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에는 인물·공연사진과 설치, 드로잉 작품 등 60여 점이 선보인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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