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바람이 다소 세게 불던 날 오후, 경남 거창 우두산 암벽등반 코스인 '실크로드'. 백인규(13·대구동중 1) 군이 20m 높이의 직벽을 오르는 중이다. 아래쪽에서 바라보는 일행들의 표정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위쪽에서 인규 군이 차고있는 안전벨트와 연결된 생명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 백승호(49·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씨. 이들 부자는 자일(안전 로프) 하나로 서로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
"인규야! 아래를 보지말고 무릎을 세워! 홀더(튀어나온 바위나 틈)를 잘 찾으면서 올라와!" 암벽등반 경력이 15년이지만 백 씨는 그래도 걱정이다. "아빠! 걱정마시고 확보나 확실히 해줘요." 인규 군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는 듯 자신만만하다.
"아빠를 믿기 때문에 무섭지는 않아요." 인규 군이 직벽에 올라서자 아버지는 아들이 대견스러운듯 악수를 나눈다. 부자지간의 믿음이 이내 부자지간의 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날 암벽등반은 지난달 가야산 '그리움릿지' 등반에 이은 두번째였다. 인규 군은 지난해 11월부터 대구시 달서구 청소년수련원 인공암벽 과정을 다니며 기초를 다졌다. 물론 베테랑인 아버지도 함께 했다. 지난 5개월을 그렇게 부자의 정과 믿음을 나눠온 터였다.
그런 믿음은 아들의 안전을 꼼꼼히 챙기는 아버지에게서 나온다. 백 씨는 이날도 등반에 앞서 아들의 안전벨트와 매듭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겠다며 시작한 암벽등반이지만 정작 아들은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을 다 안다.
장비착용을 마치자 두 부자는 스파이더 맨처럼 변했다. 백 씨가 자일을 확보하기 위해 선등(先登·먼저 오름)을 섰고 10여분 만에 줄을 내렸다. 부전자전일까. 백 군은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아버지가 오른 암벽 길을 따라 두 피치(Pitch·암벽코스)를 끝냈다.
바위 정상에 오른 아들은 "더 어려운 코스에 또 도전하고 싶고, 아버지와 함께 있으니 두려운 것이 없다."고 웃었다. 정상 마지막 순간에 아들의 손을 잡아 준 아버지는 "또래의 아이들이 하기 힘든 암벽등반을 무사히 마친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매월 한번정도 앞산, 팔공산 등에서 암벽등반 연습을 하는 두 부자. 이미 암벽등반의 매력에 중독된 듯했다. 아버지는 "바위를 타지않으면 뭔가 허전하다."고 했고 아들도 "암벽을 하기 전날부터 가슴이 설렌다."고 맞장구쳤다. 하지만 인규 군이 암벽등반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안전에 대한 어머니 도화숙(44) 씨의 걱정 때문이다. 남편이 암벽등반하러 갈 때마다 콩닥콩닥 가슴이 뛰는데 부자가 함께 나서니 마음고생이 갑절이다. 남편 백 씨가 15년동안 설악산 '주능', '천화대', 북한산 '기차바위', 속리산 '산수유' 등 전국 유명산을 누비면서 위험에 빠진 적도 있었던 터라 아들의 암벽등반 만큼은 반대입장을 강력히 밝히고 있다.
그래도 부자의 바위에 대한 열정은 그칠 줄 모른다. '믿음'이라는 강한 끈이 안전을 보장해 주고 도전정신은 스릴과 성취감을 맛보게 하기 때문이다. '실크로드' 등반 후 하산하며 맞잡은 손을 통해서도 부자의 믿음과 정은 흐르고 있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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