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봄의 수채화 '가송마을'

남도의 봄이 붉은 동백과 새하얀 매화로 출발한다면 내륙의 봄은 연분홍 진달래와 노란 산수유의 파스텔 톤으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안동서 봉화군 청량산 가는 길인 35번 국도.

섬진강을 따라 피어나는 유채색의 남도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아직은 그저 담담한 무채색이 대부분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갈색과 잿빛 전답사이로 군데군데 핀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가 봄 빛깔을 전해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다. 짧고도 빠른 계절이 봄이라고. 산비탈 좁은 이랑에 게으른 황소 발자국이 이리저리 찍히고 새참을 힘겹게 인 아낙네 걸음이 총총히 바빠질 무렵이면, 햇살 머금은 먼 산도 연분홍과 노란빛이 더욱 제 빛을 발할 것이며 앞 냇가 물 흐르는 소리도 더 크고 힘차 질 것이다.

예학과 지조의 땅 안동. 많은 경승 중 수려한 산세와 맑은 물이 으뜸인 도산면 가송리 '가송(佳松)마을'에도 봄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도심공간에 오래 있다보면 한 번쯤은 그림 같은 농촌풍경 속에 묻혀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땐 가볼만 한 곳이 가송마을(54가구 200여 주민)이다.

2004년 농촌진흥청 농촌전통테마마을과 환경부 생태우수마을에 뽑힌 가송마을은 영남의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는 청량산 자락이 마을을 살포시 감싸고 그 안을 낙동강 상류가 휘감아 도는 터에 고리재, 쏘두들, 가사리, 올미재 등 4개 자연부락이 소담스레 자리하고 있다. 강을 중심으로 동쪽에 가사리, 서쪽에 쏘두들, 그 남쪽 고개 넘어 올미재가 있다. 고리재는 마을 초입 국도변에 위치한다.

이런 가송마을이 전통테마 및 생태우수마을로 주목받는 이유는 산과 물이 빚은 천혜의 아름다움과 농암 이현보 선생의 종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외병대와 가송협

가송마을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절경. 쏘두들 초입에 있는 가송사랑방 앞 너른 마당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한 가송사랑방(체험장)이 언덕에 자리잡아 외병대와 가송협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봉화에서 뻗은 청량산 한 자락이 절벽을 이루는 외병대와 그 아래로 낙동강의 상류가 못내 미안한 듯 비껴 난 가송협이 강 양편으로 쏘두들, 가사리, 올미재를 포근히 감싸 안은 채로 흐른다.

절벽과 강이 만든 지형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고 여름에 물살을 이용한 래프팅이 가능하다.

◆가사리와 고산정

쏘두들에서 강에 난 작은 다리를 건너면 가사리. 해마다 정월 대보름 전날과 단오 전날 400년 전통의 동제(洞祭)가 유명하다. 이 부락 왼쪽 외병대 한 켠에 부끄러운 듯 있는 고산정은 퇴계 선생의 제자였던 금난수(琴蘭秀)선생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고고한 유학의 묵향을 전하고 있다.

◆하늘 말 타고 가는 길

가사리 다리를 건너와 올리재로 가는 길목에 난 30분 거리의 산책로. 쏘두들 뒤편 내병대로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길로 정상에 서면 외병대, 가송협, 고산정 등 가송마을 전체가 한 손에 쥘 듯이 펼쳐진다.

◆농암종택과 긍구당

작은 농로가 끊어지는 마지막 부락인 올미재에 들면 조선 중기 문신이자 강호문학의 대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선생의 종택이 나타난다. 종손 이성원씨가 사는 종택엔 고택체험을 위해 새로 지은 사랑채와 경북 유형문화재 32호인 긍구당(肯構堂)이 길손의 시선을 잡는다.

긍구당은 400여년 전 건물로 종택 서쪽에 위치한 별당인 셈. 작고 단출하지만 누마루를 두어 보는 것만으로도 여유와 운치를 자아낸다. 누마루에 올라 바라보는 강과 남청량산, 벽력암은 한줄기 바람처럼 청량감을 듬뿍 안겨준다.

여기서 농암은 때로 조각배 타고 물안개 낀 강 위에서 즐겁게 읊조리거나 낚시바위 위를 배회하며 물새와 고기를 벗했다. 요샛말로 이만한 웰빙이 어디 있을까.

현재 종택은 증축중이다. 분천서원과 애일당이 조만간 들어 설 예정이다. 행여 지금의 소박함이 빛을 잃지 않을까 저어되는 것은 바깥세상이 자주 변한 데 대한 감회이리라. 바위 앞 저 산 저 바위가 어제 본 듯 내일도 그대로 이길 빌어본다.

◇가송마을 체험 프로그램

가송마을은 빼어난 산수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도시인들을 위한 참살이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주로 자연친화적인 농촌체험을 중심으로 산나물 채취, 농사체험, 한지공예, 산책, 자전거타기 등을 계절별로 제공한다.

△시기:연중개방 △대상:유치부, 초중고생, 어른 20인 이상 단체, 가족단위 민박도 가능 △비용:1인당 1만원, 매끼 5천원. △예약문의:054)859-6660. 테마마을 추진위원장 남효경 011-9596-6894.

◇가송마을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IC를 지나 안동시내에서 봉화군 가는 길인 35번 국도로 약 40여분 가다보면 오른쪽에 테마/생태우수마을 팻말이 보인다. 여기서 좁은 시멘트 농로를 따라 한 구비만 돌면 바로 쏘두들 가송사랑방이 나타난다.

◇가송마을 인근 가볼만 한 곳

▲퇴계종택(도산면 퇴계리)

100여년 전 화재로 원래 집은 없어졌고 1929년 퇴계선생의 13대손인 하정공이 사림과 종중의 협조로 옛 종택의 규모를 짐작해 지금의 터에 다시 지었다. 정면 6칸 측면 5칸의 ㅁ자형으로 사대부집의 공간영역을 갖췄고 솟을 대문, 정자 등이 부속건축물로 있으며 전통생활도구도 잘 남아 있다. 현재 15대손인 이동은(98)옹이 살고 있다.

▲이육사 문학관(도산면 원천리)

2004년 7월 준공한 이육사 문학관은 크게 세 공간으로 구분된다. 1층은 육사의 생애와 문학세계, 독립운동의 자취를 다양한 방법과 매체로 구성해 놓았다. 생애는 동선을 따라 그의 삶을 시간의 흐름을 좇아 볼 수 있고 문학세계는 시, 수필, 소설 등 장르를 체계적으로 느끼게 한다. 독립운동코너엔 항일운동의 가시밭길과 감옥생활, 조선군사간부학교 훈련모습을 재현한 모형을 만날 수 있다.

2층엔 세미나실과 영상실, 기획전시, 체험공간이 있어 육사문학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꾸몄으며 주변에 이육사 동상과 청포도밭, 야외 학습광장 등이 마련돼 육사문학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문의:054)851-6593

◇몽실식당 토속정식

가송마을에서 산수의 전경에 빠지다 보면 끼니때를 훌쩍 넘길 수 있다. 이럴 땐 가송마을 나와 다시 안동시내 방면으로 길을 잡아 달리면 도산면사무소를 지나자마자 왼쪽에 파란기와집의 몽실식당이 있다.

초라한 외관에 간판도 아주 작지만 예전 어머니가 해주던 토속적인 정식 상차림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 콩이 많이 나는 안동지역 식당답게 부추나 제철 채소의 콩버물이가 일미다. 그렇다고 매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운이 좋으면 토속 콩버물이를 먹을 수 있다. 정식 4천원. 문의:054)856-4188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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