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이호우의 시조 '달밤'에는 '낙강'(洛江)의 흘러간 풍류 40년과 흘러갈 세월이 담겨있다. '달밤'이란 이 한 폭의 고적한 동양화같은 시조. 빈 나루를 호젓이 비추는 달빛아래 물 흐르는 듯한 고유한 음영(吟詠)에 '낙강'의 고매한 문학세계와 낭만이 스며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추풍령 이남에 시조가 있지, 추풍령 이북에는 시조가 없다"라고 했다. 그만큼 영남과 호남에서 가사문학과 시조문학의 대가를 배출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1960년대까지만해도 대구·경북지역은 시조문학의 볼모지라고 할만큼 시조를 쓰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같은 상황에서 시조의 본향이라 할만한 경북(대구)의 시조 저변확대와 발전을 위해 씨앗을 뿌린 문학동인이 '경북시조문학 동호회'이다. 1965년 4월 12일 발족한 이 '경북시조문학 동호회'가 오늘 '영남시조문학회'의 직·간접적인 모태가 된 것이다.
이때 창립을 발의한 시인이 이우출·김상훈·정재익·유상덕·김종윤 씨 등이었다. 이들은 초대회장에 이우출 선생을 선출하고, 61년 4월 25일 이호우 선생을 2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 해 12월 동인지 '낙강'(洛江) 창간호를 발간했다.
그 후 여러 명의 역량있는 시인들을 배출하며, 명실공히 지역문화와 민족정신을 대변하는 시조 문학의 태두로 인정을 받을 만큼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이다. 여기에는 이호우 선생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었음을 빼놓을 수 없다.
타고난 문학적 기품과 조예를 지녔으면서도 이지적이고 사상적인 면이 강했던 그는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같은 '낙강'의 유전을 대변하는 듯하다.
86년 '낙강' 제19집이 발간되었을 때 한국시조시인협회 리태극 회장은 "시조 동인지로 서울의 '토요동인', 대전의 '청자', 고성의 '율' 등이 있었으나 모두 없어지고, 영남시조문학회의 동인지 '낙강' 만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또 시문학사 주간이었던 문덕수 선생은 "'洛江'은 낙동강문화권에 깊숙히 자리를 잡고, 개성있는 정신과 미학을 창조하는 임무를 떠맡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낙강'의 전성기인 80년대에는 40여명의 회원들이 저마다 갈고 닦은 작품을 발표했다.
전국의 쟁쟁한 시인들의 초대작품을 실어 그야말로 전국 제일의 동인지로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상설 시조학교를 개설해 후진을 양성하고, 하계 시조문학세미나와 전국시조 백일장을 열어 신진을 배출하기도 했다.
명예회원인 정완영 선생은 여든이 넘었어도 "불씨처럼 살아있는 엄마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며 98년 '엄마 목소리'란 동시조집을 펴내기도 했다.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더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노 시인의 작품에는 농경사회의 아름다운 산과 들이 눈에 선하다. 건너다니던 정겨운 징검다리와 살구꽃 환하게 피던 고향마을 골목길도 손에 잡힐듯 선하다. 낙강의 유장한 흐름 속에 실려간 40년이란 세월.
한결같이 '영남시조문학회'와 '낙강'의 발전을 기원하던 풍류 문인들도 더러는 강물따라 흘러가고 더러는 바람따라 비껴서고, 초기 회원으로는 정완영·김남환·정재익·하영필·조주환·김시백·정표년·김일연 시인 등이 남았다.
그러나 동인지 '낙강'(洛江) 39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는 영남시조문학회는 오늘도 흘러온 풍류의 세월만큼이나 유유한 흘러갈 풍류의 세월을 꿈꾸고 있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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