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멀리 있는 희망은, 멀리 있어 결코 내 손을 잡아 줄 것 같지 않은 희망은 오히려 절망이다. 소위 386세대의 그 시절, 시대적 명분과 사회변혁은 간절한 희망이었으나 너무 멀리 있어 절대 내 손을 잡아 줄 것 같지 않았다. 현실에서 좌절된 꿈은 역설적으로 비상했고 그들은 낭만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그들의 세상은 그리스적 비극이었다. 그러나 비극적 주인공의 고통은 사회를 정화시키고, 비극적 주인공의 몰락은 보다 고양된 도덕적 각성의 필연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비극은 압도적으로 절망적 상황에 대항하는 주인공의 헛된 투쟁이기도 하다. 패배로 끝날 수 밖에 없는 투쟁 속에서 비극적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자신의 투쟁에 대해 후회하기도 하고 당혹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극적 투쟁의 목적과 나아가 인간의 고통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매우 다양하고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이가 반운동권을 공약으로 서울대학교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투표율의 저조로 몇 번의 재투표 후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의 특이한 경력과 이즈음 학생들의 관심사가 묘하게 어울리며 기사거리가 된 듯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와 쉬운 '포맷'과 짧은 관심 지속 기간, 그는 이즈음 20대의 한 전형이기도 한 듯 했다.
386세대의 20대가 그리스적 비극이었다면 요즘 20대는 시트콤이다. 이즈음 20대는 기호와 효용기간이 지극히 짧은 관심사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성향의 집단이다. '포맷'이 가능한 관계와 관심, 또한 언제든지 '부활'도 가능한 관계와 관심. 재미있기는 하지만 카타르시스가 없다.
2004년 6월 사이버 공간에서는 '바츠 해방 전쟁'이 발발했다(바츠는 모 게임서버의 이름이다). 사이버 공간을 지배하는 소수의 독재 집단에 맞서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이, 비록 게임 상에서이긴 하지만, 봉기하고, 저항하고 피 흘리며 죽어갔다. 이들의 죽음을 딛고 바츠는 해방되었다. 바츠 해방 전쟁사를 실시간으로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힌 이들이 게임방 곳곳에서 목격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인화 교수는 이 전쟁을 겪은 게이머들을 귀환하지 않은 영웅이라고 명명하고, 이들이 어떻게 현실세계로 돌아와 세계를 복되게 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과제라고 했다. 요즘 20대가 시트콤 세대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앞선 세대와 청년 세대의 인류적 자유와 행복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고, 인류적 희망이 가시거리에서 부활하는 부활절이 되기를 염원한다.
백운하 (주)크레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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