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류시원 作 '수화'

수화

류시원

텔레비전을 본다

텔레비전 한 귀퉁이 조그만 창을 내어

수화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다

수화란 어떤 말의 번역이 아니라

미처 할 수 없었던 말의 번역이 아닐까

문득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거나 급선회하는 새들

느닷없이 피어있는 길가의 꽃

급박하게 휘어진 조그만 골목

그리고 미처 다 듣지 못했던 당신의 이야기

그것이 수화인 줄도 몰랐던

조그만 손짓들

지금은 까마득하기만 한,

그러나 여전히 알 수 없는.

인간의 언어는 '진실'을 마냥 배신한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보라. 당신의 깊고 간절한 마음을 전하기에는 얼마나 부족한가. 그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다시 '하늘만큼 사랑한다.'고 말해 보라. 그 말의 수식이 또한 얼마나 공허한가. 이렇듯 진실을 전하려하면 할수록 인간의 말은 진실과 멀어진다. 진실은 차라리 침묵 속에 있다. 그래서 '미처 다 듣지 못했던 당신의 이야기' 속에 아니면 '미처 못다 한 나의 이야기 속에' 전하고자 하는, 듣고자 하는 '진실'이 있는지 모른다.

진실은 '침묵' 속에 있고 '침묵'을 듣지 못하는 것이 이 시대 관계 단절의 원인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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