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던 사람이 숨 넘어 가는 소리를 낸다. "이 책엔 쉼표가 없어!"
세상은 쉼표 없는 책 같다. 콘베이어벨트에 올라탄 듯 속도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멈춤'이 그립다.
멈춤이라는 쉼표를 찾아 말레이시아로 향했다. 여행의 목적지는 테렝가누(Terengganu) 주(州)의 페렌티안 섬(Pulau Perhentian). 가는 길은 멀었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프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야 했다. 이윽고 도착한 쿠알라 베숫 선착장(Kuala Besut Jetty)에서 20인승 보트에 올라탄 뒤 남중국해 바다를 달렸다. 뱃머리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과 머리칼을 날리는 바닷바람. 엔돌핀이 솟는 기분이다. 50분 여를 달렸을까. 멀리서 두 개의 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섬과 가까와지면서 "바닷물 예쁘다!"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우거진 정글이 백사장과 리조트 시설을 감싸 안은 모습. 남중국해 또는 남태평양 연안 해변에 있는 산호섬과 유사한 풍경이다. 작은 선착장에 내리면서 접한 페렌티안 섬의 첫 인상은 호젓함 그 자체였다.
산호섬 바닷가의 백사장은 모래가 아니라, 죽은 산호의 파편들이다. 그래서 밀가루 분말처럼 새하얗고 입자가 곱다. 페렌티안 섬의 해변도 그랬다. 거울처럼 맑고 잔잔한 바닷물과 눈부신 하얀 산호 모래, 투명한 햇살은 에머랄드 빛 바다 풍경을 합작으로 만들어냈다.
휴양 온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었다. 말레이시아에 사는 화교를 제외하고는 동양인을 거의 못봤다. 일본인들이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을 뿐 한국인들은 거의 오지 않는다고 현지 리조트 사람들은 전했다. 작은 섬인데다 관광지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리조트 시설이 썩 뛰어나진 않았다. 그러나 휴양 온 사람들에게 그쯤은 큰 흠이 아닌 듯했다. 모두들 남에게 방해를 하지 않고 저마다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여유로왔다.
페렌티안은 말레이시아 말로 '멈춤' '정지'를 뜻한다. 섬 이름 때문일까. 이곳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듯했다. 하루가 길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쪽빛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좋고 고운 모래를 밟으면서, 발 간질이는 바닷물을 느끼며 해변을 걷는 기분도 여유로왔다.
바닷물 위로 석양 노을이 부서지는 저녁 무렵을 지나 밤이 되자 별이 떠올랐다. 음영진 섬의 실루엣 위로 북두칠성 별 일곱 개가 떨어질듯 낮게 떠오르고 오리온좌가 옆 방향으로 누운 생소한 풍경을 보고서, 이곳이 '남국'(南國)임을 실감했다. 낮은 소리로 속삭이는 파도 소리를 벗하면서, 도시생활로 쌓인 마음의 짐을 벗어 놓았다. '쉼표 하나, 느낌표 둘.' 페렌티안 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글·사진 말레이시아 테렝가누에서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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