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주 사과밭의 봄

산벚꽃 흐드러진/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푸르름 다가고 빈 삭정이 되면/하얀 눈 되어/그 산위에 흩날리고 싶었네.('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방창)

시인은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의 봄꽃에 못내 겨운 심정이다. 시인에게 봄의 유혹은 봄꽃이 있어 더욱 강하다. 그래서 일까. 화사한 섬진강변 산벚꽃에 빗대어 열정적인 생명이 자연으로 조용하게 회귀하는 과정을 차가운 눈의 이미지로 마무리한다.

때마침 봄꽃 중 꽃말이 '유혹'인 사과 꽃이 있다길래 길을 나섰다.

우리나라에서 사과 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은 소백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진 영주시와 풍기읍 외곽 일원. 이곳에선 해마다 4월 하순이면 분홍빛이 은근히 감도는 새하얀 꽃잎이 눈을 시리게 한다.

어린 아이 새끼손가락 굵기의 여린 가지에 네 다섯 개씩 꽃이 피면 소백산 자락은 눈부시게 하얀 자수(刺繡)를 새겨놓은 듯한 풍광이 펼쳐진다.

풍기와 영주에서 사과 꽃을 감상하려면 우선 △풍기에서 부석사 가는 길 △소백산 옥녀봉 들어가는 길 △풍기에서 희방사 가는 길을 손꼽을 수 있다. 드라이브 길로도 손색이 없다.

◆풍기에서 부석사 가는 길 양편엔 온통 사과 밭이다. 전국 사과 생산의 13%를 차지하는 영주사과 중 90%가 이 방면에 있는 순흥, 단산, 부석면면에서 나온다. 일교차가 심하고 토질이 좋아 당도와 향이 뛰어나다.

이 때문에 사과 꽃이 활짝 피면 마을 초입부터 진한 향이 배어 나온다. 사과 꽃은 잎이 먼저 난 후 피기 때문에 다른 봄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향기는 유난히 짙다. 그 향기의 '유혹'에 취하지 않으려면 마음 무장을 단단히 해야 한다.

기왕 나선 봄나들이라면 순흥면에 있는 순흥문화유적권을 지나칠 수 없다. 죽계천을 중심으로 선비촌과 소수 박물관, 소수서원이 바로 길옆에 있다. 사과 꽃 나들이에 보태지는 보너스다.

기와집 17동, 초가집 7동에 정자, 누각, 물레방아, 원두막, 곳집, 대장간 등 체험과 민속시설, 저자거리가 있는 선비촌은 삶이 구차해도 올곧은 길을 실천했던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다. 소수 박물관엔 유학과 관련된 자료들과 암각화, 벽화 등 인근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고려 때 성리학을 들여온 회헌(晦軒) 안향(安珦)이 공부했던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사액서원(임금이 직접 이름을 짓고 현판을 하사한 곳)의 효시.

서원 안을 돌아 경렴정(景濂亭'북송 철학자 주돈이를 경모해 지은 정자)에 오르면 죽계천가의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 연두빛 나무새싹이 무르익는 봄을 시샘하듯 자태를 뽐내고 있다.

특히 서원의 큰문 앞 소나무군락이 사당과 강학당을 향해 가지를 뻗고 몸통을 굽혀 절하는 모습은 놓칠 수 없는 볼거리이다.

◆소백산 옥녀봉 올라가는 기슭은 부석사 가는 길의 사과나무들과 모양부터 다르다. 나직막한 키의 사과나무들이 계곡을 타고 꼭대기로 치닫는 봄기운을 조금이라도 더 잡아두려는듯 옆으로 부챗살처럼 가지를 뻗고 있다. 밑동도 더 굵다. 아마 종이 다르고 심은 지도 오래된 과수인듯하다.

길가에 접한 사과 꽃과 저 멀리 소백산 자락을 덮어 핀 사과 꽃까지, 가깝고 먼 곳의 꽃 풍경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자동차 길이 끝나는 곳에 소백산 옥녀봉 자연휴양림이 있다.

◆사과 꽃 흰 빛에 눈이 피로할 즈음엔 희방사로 방향을 돌려도 좋다. 휴양림에서 10km 떨어진 희방계곡에 있는 희방사까지 가는 길에도 사과 꽃 도열은 계속된다.

대신 연화봉 기슭에 접어들면 주변경관은 연녹색으로 바뀐다. 희방계곡을 타고 짙은 회색빛 바위 틈새로 계곡물이 포말을 일으키며 흐른다. 매표소에서 내려 포장길보다 숲 속에 난 자연 관찰로를 따라 올라가 보자.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에 50여 분 발길을 맡기면 희방사다.

계곡물이 Y자형으로 갈라지는 곳에 자리 한 가람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대웅보전 앞에 서면 주변 산세로 완전히 둘러져 있어 그 아늑함에 잠시 속세의 때를 떨쳐 낼 수 있다.

단청이 고운 설법전 아래서 바람이 불어온다. 짙은 사과 꽃 향의 유혹이 바람에 흩어지더니 희방사 연화(蓮花)의 청정한 불향(佛香)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사과꽃따기 체험

오는 30일 부석면 임곡리에서는 '사과꽃따기체험'행사가 열린다. 은은한 사과향이 밀려오는 사과밭에 직접 들어가 사과 꽃을 따보는 이 행사는 10년 이상 자연농업으로 사과밭을 짓고 있는 23개 과수농가가 공동운영하는 부석자연농업작목회에서 주관한다.

주 행사장인 마을 앞 소백산 예술촌에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디카 세상, 페이스 페인팅, 보물 찾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며 가마솥 비빔밥과 부침개 등 농촌 먹을거리도 실비로 준비한다. 예술촌 앞 개울에서 민속놀이를 비롯한 다슬기 채취와 봄나물 캐기 등 부대행사도 곁들여진다. 또 이곳 명물로 당도가 높은 '뜬바우골사과'를 맛볼 수 있다.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우회전해 931번 지방도를 타고 순흥면 선비촌과 단산면을 지나 부석사 가는 길로 가다보면 부석사 못 미쳐 왼편에 작은 교량이 나온다. 이 교량을 통과해 마을로 진입하면 바로 왼편에 있는 폐교가 소백산 예술촌이다.

주문:부석자연농업작목회 054)638-1794 (www.clickapple.com)

◇먹을거리

풍기역 앞 3대에 걸쳐 40여 년간 직접 청국장을 띄워 온 청국장전문집인 인천식당.

짜지 않으면서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청국장을 끓여내는 집이다. 오랜 노하우로 띄워낸 청국장은 특유의 콤콤한 냄새가 나지 않아 일대에선 정평이 난 곳이다.

두부계란부침, 게장에 제철 나물무침 등 청국장과 함께 내는 10여 가지 반찬들도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인삼의 고장 풍기답게 인삼을 이용한 삼우탕과 인삼갈비탕도 먹을 수 있다. 실내가 조금 협소한 것이 흠이다.

또 식당 앞은 3과 8일에 열리는 풍기 5일 장터로 주변에 상설 인삼 전시관을 비롯해 인삼가게들도 있어 질 좋은 살 수도 있다.

054)636-3224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박순국 편집위원 tokyo@msnet.co.kr

작성일: 2006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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