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의 빅 히트 뮤지컬 '그리스'는 대중들의 인기뿐만 아니라 뮤지컬사에서 점하는 위치도 녹록찮다. 하지만 작품성에 있어서는 뻔한 플롯과 빈약한 메시지로 인해 걸작의 대열에서는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그리스'를 들여다보면 작품 곳곳에 숨겨진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함의를 발견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해 마냥 신나고 발랄해 보이는 '그리스'는 주류문화에 대한 저항이며, 보수주의에 대한 풍자를 배경, 스토리, 음악 및 무대를 통해 전하고 있는 것이다.
제이미즈 유먼즈가 꾸민 무대를 장식한 자동차, TV, 축음기, 로큰롤, 햄버거, 엘비스 프레슬리 등은 번영의 시대인 50년대 미국을 보여주는 아이콘들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대 유럽 수출 증대와 더불어 참전 용사들의 사회 복귀로 인한 수요의 확대에 힘입어 산업이 번창했다. 과학기술의 발전 또한 눈부셨다. 수소폭탄 제조, TV 방송 개시, 전국 고속도로망 건설, 미국 최초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의 지구 궤도 진입 성공 등은 모두 이 시기에 이뤄졌다. 한편으로는 눈부신 발전으로 이룬 풍요를 놓치지 않으려는 보수주의가 팽배하게 되었고 정치적으로는 매카시즘과 냉전체제로 인한 불안감으로 인해 국수적 애국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가운데 부와 세련됨의 상징을 넘어 필수품이 된 자동차와 TV는 소비주의와 함께 '미국의 이상적 이미지'를 전파하는데 큰 몫을 했다.
짐 제이콥스와 워렌 케이시가 '그리스'에서 그린 여유롭고 반듯해 보이는 50년대의 초상은 역설적이게도 그 시대의 불안과 빈곤을 보여준다.
'그리스'는 윤기 나는 시대에 기껏 머리스타일에만 윤을 낼 수밖에 없는 노동자 계급의 터프가이 대니와 그 친구들의 고등학교생활을 통해 50년대 미국의 하위문화를 웅변한다. 허풍장이 건달 대니와 사랑에 빠진 '도리스 데이'같은 순진한 샌디가 마지막 장면에 보이는 환골탈태한 모습은 조신함을 강요하는 당시의 여성관을 비웃는다. '그리스'는 화장실 냄새가 진동하는 변두리 공립 고등학교 날라리들의 연애담에 풍요를 선망할 뿐 누리지못하는 계층과 기성세대의 보수적 관념에 질식당한 젊은 세대의 발칙한 도전을 저속한 로큰롤 음악에 담아 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김미정(영남대 외국어교육원 연구교수·공연예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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