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결혼의 계절] 평범한 예식은 싫다

결혼식을 다녀온 사람들이 늘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음식이 어떻더라 또는 주례사가 길더라 등등. 하나같이 결혼식이 천편일률적이고 형식적이다보니 신랑·신부 당사자나 하객들은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식상한 결혼식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이색 결혼식이 그것이다.

지난 2일 오후 대구 동구의 한 웨딩홀. 김성현(32·가명)·이영미(29·여·가명)씨의 결혼식.

주례사 대신 김씨가 서약문을 들고 신부 이씨를 향해 사랑의 서약을 낭독했다. 하객들이 의아해하는 가운데 이씨 또한 서약문을 낭독하며 "사랑한다"라는 말을 되뇌었다. 시끌벅적하던 식장은 점차 숙연해졌다.

주례 선생이 서야 할 강단에 신랑의 아버지가 올라섰다. 많이 긴장한 탓에 말을 좀 얼버무렸지만 신랑·신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네 명만 낳아 잘 길러라."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 비로소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부의 아버지도 강단에 섰다. 애지중지 키우던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하자 신부의 두 눈이 촉촉해졌다.

마지막으로 신랑·신부가 부모에게 올리는 편지가 낭독됐다. 신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손수건을 훔친다. 평소 결혼식에서 느끼던 지루함 대신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상당수 하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그 모습을 줄곧 지켜봤다. 식이 끝나자 하객들의 박수소리는 식장을 한껏 울렸다.

★잔잔한 감동이 있다

식상한 결혼식은 싫다. 개성 넘치는 신세대답게 요즘 예비부부들은 이색 결혼식을 꿈꾼다. 대표적인 경우가 주례 없는 결혼식.

지난 1월 주례 없는 결혼식을 했던 직장인 김진영(29·여)씨는 "결혼식이 뭔가 진솔하고 색다르기 때문에 하객들이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경기도에서 직장을 다니는 신랑·신부가 대구에서 결혼식을 하려니 마땅히 주례를 부탁할 곳도 없었고 주례 비용도 만만찮았다는 게 이유였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하지만 김씨는 "그저 형식적인 주례보다 당사자가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님이고 그런 부모님이 직접 나서 한 말씀해주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부모를 설득했다. 부모가 읽을 원고를 직접 도와주면서 재미도 느꼈고 막상 하고 나니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하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최중호 웨딩피플 실장은 "주례의 의미가 형식적으로 변질되면서 아예 주례를 없애고 좀 더 뜻 깊은 결혼식으로 만들려는 것이 주례 없는 결혼식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색다른 결혼식이 좋아

대구가 워낙 보수적이라 서울보다는 못하지만 이색 결혼식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느는 추세다. 주례 없는 결혼식 외에 스크린을 통해 신랑·신부의 개인 역사나 사랑을 키어온 과정 등을 보여주는 스토리웨딩, 파티 형식의 웨딩 등 다양한 형태로 결혼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결혼식의 기본적인 틀은 지키면서 당사자나 하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이벤트를 포함시키는 것.

직장인 신상민(27)씨는 지난 1월 결혼식 도중에 신부에게 깜짝 프로포즈를 했다. 신씨는 오랫동안 신부를 만나다보니 프로포즈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부가 아쉬워할까봐 결혼식 당일 신부에게 프로포즈를 하려고 마음먹은 것이다. 신씨는 식장 스크린을 통해 신부에게 "사랑한다."라는 맹세를 했다. 신씨는 "신부가 친구들 모두 부러워했다며 무척 기뻐했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신부에게 신랑이 기타를 치면서 축가를 부른다거나 자신이 가입한 댄스동호회 회원들을 불러 댄스 공연을 하는 경우, 마술을 통해 반지를 끼워주는 경우 등 개인의 취향이 가미된 결혼식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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